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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09. 2021

노고산동 물떡볶이

오후가 되고 해가 지면 동네가 저문다

1980년대 중반, 나는 국민학생이었다.
어린 꼬마는 잠시 꼬여버린 집을 떠나 친척집에 맡겨져 자라고 있었다.
방학 때는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스스로 위탁(?)을 신청하기도 했다.
노고산동 언덕배기 낡디 낡은 단층집 , 판잣집과 비슷하게 생긴 작은집. 그 집에는 큰 이모 식구가 살고 있었다. 누나들이 있었고 형도 있었다. 누나들은 어린 위탁객(?)을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 집에서 wham을 처음 들었고 마론인형 가지고 노는 것도 배웠다 (나중에는 옷도 만들어 입혔다.) 웰라폼도 그 집에서 처음 봤고 누나들이 청바지도 사줬다.

날씨가 흐릿한 날이었다. 늘 일 때문에 바쁜 큰 이모가 하루 집에 있던 날이었다. 아랫동네 어귀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아래에서부터 노고산동 꼭대기 이곳까지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모는 밖에 나가면 경찰이 잡아가니까 방에 있으라 했다. 갑자기 나무 대문이 열리고 웬 아저씨(이십 대도 아저씨로 보일 때니까)가 갑자기 들어왔다. 이모집을 찾아온 사람은 아닌듯했다. 이모가 당황해서 ‘누구세요’라고 물어봤으니까. 학생이라고 하더라. 경찰 때문에 도망 왔다고. 이모는 익숙하진 않지만 침착하게 들어오라 했다. 학생은 작은방으로 들어갔고 이모는 대문 앞에서 학생들과 경찰들이 뛰는 것을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동네는 조용해졌다. 매캐한 냄새는 여전했다. 학생은 좁은 방에서 나왔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낯선 풍경이었지만 이모는 낯선 사람에게 익숙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동네가 조용해지고 아랫동네로 내려가서 놀아도 괜찮은 시간이 되었다. 누나에게 늘 그렇듯이 생떼를 피웠다. 창천 국민학교 앞에 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었겠지 머. 저녁밥 먹기 전이라 이모에게 안 걸리게 누나랑 아랫동네로 조심스럽게 도망쳐 내려왔다. 낮에 왔던 대학생은 당당해 보였는데 우리는 왠지 죄를 지은냥 말이다.  

떡볶이는 늘 그렇듯이 심드렁하게 불어있었다. 빨간 벽돌을 갈아서 국물에 넣으면 이런 모양새일 거 같았다. 밀가루 떡에 양념이 붙지 않았다. 오늘도 그렇듯이 우리가 ‘한판’의 마지막 인가 보다.
국물하고 같이 먹는다. 달다. 그냥 설탕은 아닌 거 같고 아까 보니 미원인지 설탕인지 시원하게 쏟아 넣는 걸 봤으니 그 무슨 맛이겠지. 새로 끓인 ‘한판’을 또 먹고 싶었지만 오늘 저녁밥은 동태찌개다. 밥 거르면 지금의 범죄사실을 소명해야 했다. 아쉽게 일어난다.
다시 윗동네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면 소화되겠지.
오늘도 떡볶이는 달다. 매운맛은 없다.

매운 건 골목으로 이미 충분했다.

80년대 노고산동 언덕배기 사람들은 학생들을 자주 품어주었다. 시대가 그랬다. 사람을 품어주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 울고 넘는 박달재 작곡한 할아버지가 옆골목에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덕배기를 어지간히 좋아하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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