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 짓는 사람 Jan 11. 2021

초코과자

여전히 과자도 흔적도 남아있다.

집에 도착해서 자기 전에 가벼이 한잔을 하려고 편의점에서 사 온 초코과자 ...키커 라는 이름의 초코렛이다

과자는 단것이 당길 때 생각이 난다지만 키커는 우습게도 명절이 되면 생각나는 초코과자 이름이다..

사십 년도 지난 시절 이야기. 장손에게 시집온 며느리의 명절 하루의 이야기다.

신당동 시집은 별것도 없지만 별꼴도 안 되는 집이었다.

산동네 그 골목 대부분이 그랬듯이 가난이 특산품이다.

개같이 라는 거친 수식어가 어울리는 가난이다.

이리도 가난하면 차라리 춥지도 않다. 물가에 있어야 축축하지 강물 가운데 빠지면 숨 쉬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가난한 집에 시집을 온 충청도 맹한 처자는 시집을 와서야 이 집의 가난을 실감한다.

서울에 살면 다 부자인 줄 알던 그 시절... 서울의 4대 빈민촌인 신당동 산동네에 구질구질한 쪽방집...

시집을 와보니 남편 밑으로 예닐곱의 여직 자라지 못한  형제들.... 건넌방에는 아침마다 원기소를 드시면서 반야심경 테이프를 틀어놓으시던 할머니...

집은 늘 번잡했고 축축했으며 무겁고(무거운 이불이었다. 온 가족이 병렬로 누워 이불 한두 짝으로 잠을 청하던 , 마치 말아 올리기 전 김밥과도 같은 모양새의 이불 짝이다...) 어딘가에서도 맡을 수 없는 젖은 음식 냄새가 붙어있는 집이었다.

장손의 와이프라는 자리는 꽤나 가혹했다.  
남들이 보기에도 모자란 게 없지만 안타깝게도 집이 가난하여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믿는 아들. 그 아들의 아내는 박색도 아니고 크게 잘못한 게 없지만 늘 시어머니의 분노의 대상이었다. 내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라는 밑도 끝도 없는 분노는  첫째 며느리가 이 집안에 들어온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개인적 분노로 치환시키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며느리는 명절이 되면 한 벌뿐인 한복을 입고 달동네 구식의 부엌을 오르내리는 박복한 하루를 반복했다.

아들이 문제다. 도와주지 못하고 근엄 과 부끄러움의 중간 어디에 걸려버린 남편이자 아들이었던 장손도 문제다...
아들이 문제다. 그 좁은 집에서 하루 종일 오르고 내리고 지지고 나르고 가혹한 노동을 독점하던 지 에미에게 철없이 한복 치마를 잡고 쫓아다니면서 조른다.

"키키 사줘.. 키키 사줘..."

어르고 달래고 해 봐도 철없는 아들은 철이 없음을 증명한다... 참다 참다 부엌 어귀에서 잡힌 어머니는  나 좀 살려달라라는 손짓으로 철없는 아들의 점퍼를 휘두르며 " 고모한테 사달라고 해"라고 손짓을 한다.

점퍼는 그냥 옷이었지만 철도 없었던 아들은 기어이 철을 찾아간다. 철로 만들어진 지퍼 꼭지(?)에 머리를 맞고.... 철없는 아들의 이마 위로 생피가 주르륵 흐른다.

집안은 난리가 난다. 하나뿐인 손자가 머리에서 피를 흘린다. 며느리는 북조선 인민공화국 재판정 수준의 혼쭐이 나고  토할 곳 없는 억울함을 부엌 구석에서 삼킨다.

철없는 아들은 급히 고모들이 사 온 키커를 입에 물고 울음을 그친다.  사실 아픈 것도 몰랐지... 피가 흐르니까 놀라서 운 거지... 키커는 맛있었다. 오십 원인가 그랬는데...

삼십오 년이 지나서 또 먹고 있구나...

맛은 있네.... 기억으로만 그대로인 줄 알고 있지만.

신당동도 없어졌고  그 비루한 쪽방 집도 없어졌는데.... 과자도 남아있고  내 머리에 상처 흔적도 남아있고


그저 어린 가난만 뒤에 숨겨놓은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노고산동 물떡볶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