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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an 14. 2021

안동 배추전

소똥 던지고 노는 아이들



찬구 용호의 외할머니 댁은 안동이다. 지금은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알 수 없고 지명도 잘 모르지만. 당시 그 집을 가려면 안동에서 버스를 타고 강가에 내려서 줄배를 타고 들어갔다. 내려서도 마을까지는 과수원 두어 개와 논을 지나 한참.  마당에는 물을 넣어 물을 끌어올리는 '작두펌프'가 있었고 부엌에는 무쇠솥이 있는 아궁이가 있었다.

아랫목은 절절 끓다 못해 화상을 입을 정도였으니 , 이미 마짝 구워진 종이 장판의 화상 지도를 따라 눈치껏 피해 데구루루하면 그 또한  지져지는 쾌감이 있었다.

동네를 나가 사당이 있는 언덕배기를 오르면 뉘 집 무덤인지 잘은 모르지만 마을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무덤 두 개가 나지막이 엎어져 있다. 그 무덤가에는 꼴을 먹이려고  가끔 소들이 올라오곤 했다. 나지막이 풀이 많았으니까.

겨울날 저녁이 되면 바짝 마른 언덕배기 근처가 더더욱 휑해진다. 듬성듬성 검은 돌뎅이가 보인다. 용호가 그걸 들어 원반처럼 던진다. 일단 피하고 보니 더 가관이다. 소똥이 넓게 퍼져 말라있는 걸 던진 것이다.  " 소똥은 냄새 안 나" 하며 재차 던지는 친구 놈. 두어 번 피하다가 한 개 맞았다. 냄새 걱정보다 더 큰 아픔이 왔다. 겨울 언덕 바람에 바짝도 말랐다. 소똥이 아니라 돌뎅이다. 정말 냄새는 안 났다. 꼴을 먹고 자란 소똥은 냄새가 안 난다.라고 했다. 그날 오후는 그 말을 믿었다. 물론 사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냄새가 안 날 리가 있겠냐. 건드는 사람 없으니 바람 타고 냄새가 바짝 도망간 것이다. 바사삭하는 느낌처럼 말라  휙 하고 던지면 날기도 잘 난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덜 마른 놈을 잡으면 날지도 못하고 추러렁 하면서 땅에 떨어진다. 손에 나는 냄새는 덤이다.
사람 냄새랑 비슷하다. 할머니방  오래된 이불 냄새처럼 뜨끈하기도 한데 , 배꼽 언저리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 같기도 하다. 손이야 집에 가서 펌프에 손대고 닦으면 되니 이번에는 바짝 마른 놈을 잡아 갈대밭 위는 넘겨서 던져야겠다.

하루 종일 똥이나 던지고 놀다 들어오면 , 아궁이에 깨 털고 남은 깻단 후다닥 태워서 솥 끓이고 그 솥에 무려 라면을 끓여주신다.  라면은 삶아져 나온다. 국물에도 기름이 안 보이고 꼬불거려도 좋을 면은 길게 늘어져 국자로 떠야 겨우 떠진다.
고봉밥도 버거운데 대접 라면도 신기할 따름이다. 삶아 먹는 라면이라 그런지 , 밀 것임에도 소화에 문제가 없다. 게다가 반찬은 마당 가득 널어놓은 무말랭이로 만든 짠지다. 면은 그저 후루룩 마시면 되지만 꼬도독한 말랭이는 씹고 또 씹으면 매운기 다 빠진 후에 무 단맛이 나온다. 꼬도독 하다.

배추전은 야밤에 먹는 간식이다. 논두렁 밑에 구멍 뚫어놓고 배추만 날로 넣어놓으면 겨우내 힘없이 눌려있다. 이걸 배추 머리째 들고 와서 풀 죽은 이파리를 한 장씩 뜯어 밀가루 물 발라 프라이팬에 굽는다. 한번 지져진 배추는 기름기 먹고 잠시 힘이 살아난다. 기름지게 먹어도 뱃속이 무겁지 않다.
밥을 또 삶아주실 예정이니 말이다.

무덤 아래 사당은 "남묘호랭교" 사당이라 했다.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소똥 갖고 노는 데 방해 안되니 괜찮다.
내일은 눈이 올 것 같다. 눈이 와도 이미 잘 마른 소똥이 쉬이 젖지는 않는다. 놀기에 충분하다. 휙 하고 던지면 넓게도 날아가는 놀잇감이었다. 소똥이었다.

배추전과 소똥. 둘 다 넓고 철퍼덕이다. 길 가다 넘어지면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하는 말 같은. 철퍼덕이다.


겨울 안동 논밭 논두렁의 을씨년스러움만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시골 마을은 해지고 별빛으로 파르스름할 때도 그 역할이 있다. 모여서 우짖던 하루를 접고 할머니 곁에 앉아서 기름 번철에 배춧잎이라도 구우며 밤을 보내라고 말해주는 색이다. 새들은 우짖고 할머니가 주는 모이를 받아먹는 우리도 방구석에 모여있다. 엉덩이가 뜨거워서 번갈아 가며 들썩들썩하면서 말이다.


낙동강은 얼었어도 그 날 그 밤은 잘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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