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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Mar 19. 2021

시한부 환자의 물컵은 왜크리스탈이야.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보며

요절,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것. 죽음은 누구에게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요절 앞에서 배반과 오열을 좀 더 담아 전한다.  하지 못한 것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누구라도 순리에서 벗어난 죽음이라 생각되어 배신의 감정이 더해지는 것일까. 주인공은 어쨋던 요절했다. 군산 , 바다 가기 전, 영화에서는 하야시가 살던 예전 가옥이 언급되지 않으니 그냥 군산 구 도심 정도. 사진관이 더럽게도 이쁘게 계속 그려져서 남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물타기 하는 기분이다. 왜 그렇지 않은가. 우리 '호상' 이면 남의 장례식에서 그렇게도 신명 나게 화투짝을 돌리기도 하면서 "망자가 저어기 앉아서 좋아하고 있어"라고 말도 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죽어가는 남자가 왜 그렇게 옷은 잘 입어?. 원래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이면 피부도 발진이 일어나고 입술도 좀 갈라지고 그래서 말이야. 동정으로도 키스나 한번 해주고 싶게 생겨야 맞는데. 아프다는데 남자가 이뻐.

비가 오는 밤. 그렇게 난리라도 나야 이불속에서 베갯잇 물어뜯으면서 누굴 원망이라도 하지. 그게 정상이잖아. 내가 죽어가는데 왜 다들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어. 나처럼 남을 경멸하던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이라도 받다가 죽어도 되잖아. 남들에게 기억으로 남는 거 , 좋게 남으면 오래 못가. 진상으로 남아야 나중에 웃긴 놈이라고 장르 바꿔가면서 기억에 남지. 


영정 사진 찍으러 온 할머니는 얼굴이 비대칭이고 어깨가 한쪽으로 굽었어. 살아온 궤적이 오른쪽이었다는 말이지. 본인은 모르시겠지만 그렇게 한쪽으로 기울어서라도 기우뚱하지 않고 살아오셨잖아. 이제 죽어가는 남자는 아직 기운 쪽도 없어 보이드만. 죽기 전까지 다리라도 한쪽으로 막 꼬던지 말이야. 척추라도 좀 틀어지면 한쪽으로 간 거 같잖아. 길이 가다가 끊기면 좌측 산으로 가는지 우측 해변으로 가는지 당최 감이 안 오는 것처럼 남자는 수박씨 뱉는 것처럼 방향도 잘 안 잡혔는데 죽어야 하고 말이야. 


병원에 들어가 약 털어먹고 물 마실 때 , 남자가 들고 있는 물 잔이 크리스털이야. 이름만 그렇게 불리는 유리 물컵. 꼭 보면 환자들이 창밖 보면서 약 먹고 물 마시면 크리스털 물 잔을 주는 거야. 손목이 가늘어져서 청승 미가 더 강해지는 건가. 아니면 크리스털은 오염이 덜되어 보이니까 무균실까지 가기 전 아직은 살만한 곳에 있어.라고 강박하는 건가. 아무튼 나는 결심했어. 앞으로 물 잔은 크리스털 잔을 쓰지 않기로. 죽어가는 이에게 어울려서가 아니라 너무 청승맞고 그렇잖아. 그 물 다 마시면 며칠 안 남은 오늘 하루 다 쓴 거 같고.


죽기 전까지 초원사진관이 색 바래지 않고 엽서같이 나와서 좋더구먼. 눈에 담아 가면 딱 좋을 풍경이 있었으니까 길게 잠드는 동안 정신 혼미하지 않고 평온했을 거야. 여자..? 여자에게 구질구질해져도 말했어야지. 그래야 여자도 평생 마음에 두고 살고 , 아니면 그런 사람 하나 있었다고 추억팔이에 쓰여도 좋고. 애살맞은 남자로 기억되는 거잖아. 나 같으면 꼭 이야기했을 거야. 구질구질해도 말이야. 그럼 피멍 자욱 길게 남아 껍데기 자꾸 벗겨지는 입술에 뽀뽀라도 해줬을 거잖아. 그런 동정은 받아도 돼. 그거 동정 아니고 그 여자한테도 짧고 굵게 사랑이야. 부채의식도 없고 기억에는 오래 남는. 딱 거기까지만이라도 해봤으면 서로 아프지 않고 사랑이잖아.


어젯밤에 영화 볼 때는 "내가 이영화를 봤던가?"라는 생각에 화면 구석구석 읽어가며 보느냐고 영화가 이뻤어.

하루가 지나고 나니까. 요절한 남자 장례식에 와서 구석에 앉아 혼자 소주 따르면서 향냄새 나는 쪽에다가 욕하는 친구같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네. 여자를 여름에 만나서 다행이야. 잊으려고 핑계를 댈 때는 "땀 흘려서 모든 게 찝찝했어" 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거참. 왜 사랑한다고 말이라도 해보고 가지 이 청춘아. 원래 인생이 책임 못지는 일만 반복되는 거잖아. 그때가 크리스마스 맞네. 남 기다리다가 다리 풀려서 넘어지는 청춘들이 그렇게도 많데. 크리스마스에.  암튼 다 사라졌겠지만 군산에 한번 더 가봐야겠어. 초원사진관 건너편에서 대충 바라보고 있으면 " 나에게도 엽서같이 보일는지". 초원 사진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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