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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Mar 23. 2021

들깨 가루를 못 먹는다.

이기적 식성을 갖기로 결심했다.

몇 해 전 일이다. 그래 대략 십오 년 전 즈음으로 설정하고 기억을 꺼내보자.



어떤 한날 아침에 어머니가 감자탕을 아침으로 끓이시는데 갑자기 울컥해서 안 먹는다고 했다.


나는 감자탕이 싫다. 정확하게는 감자탕에 올라가는 들깨 가루가 싫다. 생 깻잎도 싶다. 들깨 가루가 몸에 좋은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심지어 몸에 좋으라고 들기름만 골라먹는 주제에. 모순이다. 입으로 말하는 것도 모순 투성인데 입으로 삼키는 것도 모순이다. 


물론 모순에는 근거가 있다. 근거는 논리적 바탕을 함께 두고 있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단편적이거나 단방향의 기억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아버지는 개를 사랑하셨다. 애견인의 기준이 지금과 사뭇 다를 수는 있다. 개에게 (반려견이라는 호칭이 융통되지 않던 시절이니까) 별도의 사료는 없었다. 그저 밥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강아지 건건이"까지 생각할 여력이 있을 때 남은 밥에 뜨거운 찌개국물을 적당히 넣어 비벼 주면 키우던 개 해피는 이름처럼 행복하게 밥그릇을 비웠다. 나는 강아지를 더 좋아했는지 내가 먹던 밥공기에 밥을 말아주었고, 가끔은 사람도 먹기 힘든 흰 우유를 남겨와서 흰밥에 말아서 해피에게 주었다. 엄니의 사랑은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도 해피를 구박하시다가도 끼니 거를까 봐 기어이 한 그릇을 만들어 끼니 거르는 일이 없도록 했다. 나와 동생은 그저 이뻐라 하며 괴롭힐 줄만 알았지 해피의 똥오줌 한번 치우지도 않았다. 전부 엄니와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러니 해피도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수용해서 판단했을 때 아버지가 서열 1위 엄니가 서열 2위 정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 애견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아버지는 개에 대한 호오가 아예 없으셨는지도 모른다. 개를 키우고 챙기는 것도 좋아하셨지만 개고기를 드시는 것도 무척 좋아하셨으니 말이다. 개인의 취향이니 그 부분은 간섭할 영역이 아니었다. 그리고 개를 키우는 기간 동안은 집에서 드시는 일은 없으셨으니 아버지 나름의 룰은 있으셨던 것 같다. 다만 어릴 때 집에 들어오면 집에서도 직접 해서 드시는 난리통에 온 집안은 들깨 가루 끓는 냄새가 자주 포착되었다. 시래기인지 우거지 인지 풀을 삶는 냄새도 같이 집안을 채웠다. 엽록소가 삶아지는 냄새가 그렇게 역한 것인 줄은 몰랐다. 아마 농촌에 살았어도 쇠죽 한통 삶는 일도 거들지 않았을 듯하다. 다시 개장국 이야기로 돌아와서 ,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주시는 음식은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지만  보신탕은 완강히  거부했던 것 같다. 그러면 평소 거절하지 않는 순한 아들의 발작에 헛웃음을 지으시며 "얼마나 맛있는데..."라며 조금은 쓸쓸하게 돌아서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시절 집에 들어올 때 문 앞에서 들깨의 향이 느껴지면 도망을 가서 냄새가 사라지길 기다리곤 했다.  지금은 드시는지 안 드시는지 모르겠다. 보신탕을 집에서 끓여 드신 건 나의 발작으로 한 계절을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나는 다른 곳에서도 들깨 냄새가 나면 몸이 먼저 반응해서 우회를 하곤 했다. 그런 편식은 스무 살이 넘어서는 순간 자리마다 다르긴 하지만 내기준에서 볼 때 '사회적(?) 포지션이 우월한 자리'가 아니면 꽤나 위장을 잘했던 것 같다... 먹는 척도 잘하고.. 그러나 그게 화근이었다.. 먹는 척을 한다는 것...


어떤 계절에 만난 인연이었던가. 술도 꽤나 좋아하고 호탕한 대화를 나누던 여자분은... 첫 만남에 감자탕을 권했다. 그때 나는 솔직하게 말을 했어야 했다. 나 감자탕 싫어한다고... 그런데 늘 여성 앞에서 비루했던 포지션을 유지했던 나는 '편식의 습관이 없다'...라는 거짓말을 했고... 나는 그 인연과 헤어지기 전까지 서울의... 혹은 지방의 모든 감자탕류를 섭렵하는 식 노예 생활을 했다. 처음에 거짓말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 정도는 스스로에게 주는 페널티라고 생각했는지 그 여자에게는 끝까지 이야기하지 못했다. 

가진 것 없는 직장인 그것도 월급 뻔한 중소기업, 시원하게 망한 집안(이게 왜 감자탕 하고 연결되는지는 아직도 우물쭈물이다)과 그다지 미래도 밝지 못한 청춘이 편식까지 한다고 해봐라. 가지가지한다고 하겠지.


시간은 흘러 그 사람은 자기 인연을 찾아가게 되었고 나는 그때 그 시절 감자탕 골목에 여전히 버려져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나만 늙어갈 줄 알았다면... 첫 만남이 다시 돌아온다면...


 "우리 다시 시작할까?"라는 말 대신에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나 들깨 가루 되게 싫어해.... 나 편식 심한 놈이야..."


.

..

가만있자.... 내가 무슨 음식을 못 먹더라?..... 억울해서 안 되겠다.

먹고 싶은 거 먹고살아도 언제 갈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데.... 한 시간의 밥상을 매번 참회의 순간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기억이 이렇게도 이기적이다. 이쯤 되니 생각나네. 강아지 이름은 해피인지 뽀삐인지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감자탕 권하던 사람은 얼굴도 기억 안 난다. 그냥 들깨 가루 생각 중에 엉켜있던 기억을 내 마음대로 가져다 쓴 것 같다. 그러므로 위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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