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볶음을 기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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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동화 같은 책들 중 음식을 상상하게 만든 구절들이 있었다.
아마 80일간의 세계일주였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 안타깝게도 내 기억의 한계는 이십 년 정도만 저장이 되는 듯하다. (쥘 베른 인지 찰스 디킨스 인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음식에 대한 묘사는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 음식에 대한 동경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했었나 보다.)
음식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았다. “다진 고기를 팬에 두툼하게 구워서 고기의 육즙이 흐르지 않게 해 주고 얇게 채친 감자를 버터에 볶아 두툼하게 접시에 담아 올렸다” 접시도 상상이 되고 감자의 향도 상상이 되었다. 다만 자라는 동안 어디에서도 “잘게 채친 감자를 담뿍 올린” 접시를 만나지 못한 것이 계속 기억 속에서 해결 못한 방학숙제처럼 남아있었나 보다.
35살이 되어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것을 타게 되었다. 만일 그전에 제주도라도 가봤더라면 독일까지 날아가는 ‘첫 비행기’ 출장에 대해 동경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제주도까지 날아가는 50분 동안 폐쇄공포증과 비행기 공포증 그리고 적절한 고소공포증을 동시에 표출하는 완성형 비행공포 환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비사막을 넘어 날아가는 비행기는 에어포켓도 없었고 밤이 되면 80년대 포항 같은 곳으로 가는 시외버스 정도의 소음과 체취로 가득 찬 곳이었던 것이다. 공포는 마주치지 않았을 때 가장 큰 것이었고 첫 비행 때는 그냥 술이나 마시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스위스 공항에 내릴 때는 의자를 움켜쥐고 속으로 외쳤다.” 이 미친 비행기가 왜 밭에 착륙하는 거지? “ 인천공항 대비 스위스 공항은 작고 무서웠다.
독일 출장에서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하면 되니까.
저녁까지 다 먹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물보다 싸다는 하이네켄이나 마시는 것이 다였고. 어글리 코리언의 면모를 뽐내기 위해 굳이 호텔 식당에 앉아서 꼬마 김치와 신라면을 꺼내 소주와 먹는 짓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음식이 맞지 않았다. 아침에 조식으로 나오는 우유는 건장한 유럽인이 아침에 전신욕을 하고 나온 욕조의 우유인지 암내가 심했고 빵은 아관파천 즈음에 조선으로 진군을 준비하던 러시아 군인들이 베개로 쓰던 돌빵 같은 맛과 느낌이었다. 당시 90킬로가 넘는 몸으로 데이트할 때도 그 흔한 피자나 파스타 한 번을 먹지 않던 헬조선의 한남 입맛을 가진 나에게 독일의 음식은 한입만 먹어도 배가 더부룩해지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계속 선보여주었다. 가끔 먹는 중식 덕분에 변비는 면했지만 입은 계속 까끌거렸고 그 좋다던 독일 맥주도 한심하고 신맛이 나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서 저녁에 현지 매니저가 식당을 예약했다고 한다. “그래 오늘도 잘 버티고 숙소 가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라면을 먹자”라는 생각을 하고 지하에 있는 담배연기 자욱한 식당에 들어갔다. 물보다 먼저 맥주가 나왔고 잠시 후에 장충동 같지 않은 장충동 느낌의 접시가 나타났다. 독일식 족발 ‘학센’이라고 한다. 맛있었다. 예전에 워커힐에서 먹었던 통돼지 바비큐 같이 부드러운 맛이었다. 허겁지겁 다들 맛있게 먹는다. 접시 한쪽에 둥그렇게 뭉쳐진 노란 음식이 있었다. 포크로 슬쩍 찍어서 입에 넣는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그렇게 묘사했던 바로 그 감자볶음의 맛이었다.
국수같이 얇게 채 져진 감자를 버터를 살짝 둘러 고소하게 볶아낸 맛. 결이 살아있고 녹말의 찐득함은 입에서 걸리지 않으며 고소함은 그 소설에서 묘사했듯이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게 만드는 맛. 글로 익혔던 그 음식을 35살이 되어서야 독일 시골 어딘가에서 맛을 보았다. 소설은 허구가 아니었고 내 입은 드디어 밀린 숙제 한 꼭지를 풀었다. 그 날 저녁은 컵라면을 찾지 않았다. 나는 글로 동경했던 작은 선물은 만났고 맥주는 시큼하지 않고 시원했다.
한국의 소설은 음식의 묘사에 대해 상대적으로 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성껏 묘사한 전경 속에서 촌부의 음식이나 지나가는 보부상의 낭만을 그려준 메밀꽃 필 무렵 같은 글도 있지만 비감한 아름다움에 집착해서 일까 이효석은 메밀꽃의 향 자체가 그다지 향기롭지 않다는 사실은 건너뛰었다.
김유정이 삶의 말미에 ‘그저 살고 싶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 하며 닭을 삶아 먹어서 폐병을 이겨내겠다고 청하는 구절을 읽고 나면 그 뽀얀 국물의 닭백숙이 더 이상 따쓰해보이지 않는다. 처절한 국물이 남는다.
미천한 상상을 하건대 우리의 민중들은 혹은 민중의 삶을 그려내던 작가들은 민중들이 먹고사는 것을 그릴만한 내용이 없어서 그저 그렇게 뛰어넘지 않았을까. 근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 묘사 속에는 박정희 시절 전후 배급과 자력갱생 이후에 음식 같은 음식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기층 민중이 여전히 초근목피를 했다는 것만 쓰는 것은 너무 남루한 옷을 입히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한다.
역사 속에서 음식을 음식답게 먹고살던 시절이 언제부터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자린고비 이야기는 지금처럼 영양상태가 부유한 시절에는 웃으면서 읽을 수 있지만 실제 그 시절이었다면 그거 참 슬픈 일이다)
숙제를 마쳤지만 여전히 그 본연의 맛을 찾지 못한 음식도 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소설에서 잠시 잠깐 한 줄도 안되게 묘사한 안남미의 그 맛.
“씹으면 달큼하지만 후후 불면 밥이 날아가”라는 구절. 그것도 없이 사는 시절에 없이 사는 집을 가면 안남미를 받아온다는 슬픔의 정서가 같이 결합된 맛. 베트남 음식 말고 안남미로 밥을 지어 그 밥을 담뿍하게 입에 넣고 씹어보고 싶다. 전쟁고아가 동생을 위해 밥을 깡통에 얻어와서 느꼈다는 그 달큼한 맛이 진짜인지 밥을 씹어보고 싶다.
이른 점심때 엄니가 감자볶음을 해주었다 감자볶음은 그저 그런 음식이다. 쉬운 음식이고 주변의 음식이다. 그래서 맛있게 하는 게 더더욱 어렵다.
오늘은 육아에 시달리시던 엄니께서 실수로(?) 간을 잘 맞추셨나 보다.
갑자기 한국의 감자볶음이 아닌 독일 시골마을의 그 지하의 담배냄새와 맥주가 생각났다. 그리고 어릴 때 읽었던 함부르크의 그 감자채 구절도 생각났다.
맥주나 한잔 마셔야겠다. 감자볶음에 대해 내가 갖출 수 있는 최선의 예의다.
술 한잔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그리고 뻔뻔하게 말하려고 몇 줄의 쓸데없는 글을 낭비하는가. 오늘 하루도 비루하다. 그러니 맥주나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