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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ul 25. 2021

초승달과 그믐달

가장의 밥상. 가난의 투정

초승달은 배가 차오르는 하늘이고 , 그믐달은 허기져서 쪼그라드는 하늘이다.


강원도 음식 중에 감자 옹심이가 있다. 감자를 갈아 녹말을 가라앉히고 그것으로 건더기를 뭉쳐 끓여낸 음식이다. 녹말로 만든 건더기라 그냥 밀것들을 넣고 끓인 국수 따위(?)보다는 찰지게 씹힌다. 아무래도 밀 것으로만 끓인 한 그릇은 먹을 때는 좋지만 먹고 나면 들판 가서 뛰놀지 말라는 할매들 말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금세 헛헛해진다.  국물만 홀홀 마시고 뒤돌아서서 오줌이라도 갈기면 아랫배가 푹 꺼진다. 아버지는 예전에 무용담처럼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다. 배가 고파서 허기를 때우는 방법으로 막걸리에 밥을 말아먹었다는데, 물론 군대에 있을 때 무용담이다. 사실이 아닐 것이다.  배고픔은 늘 그랬다. 사람의 기억보다 가혹하거나 낭만적이거나.



옹심이가 잘 뭉쳐지고 헤졌다. 잘 뭉쳐진 것은 녹말의 힘이 더해져서 혀끝에서도 끈적함이 남아있는 것. 이빨 사이에 옹골차게 끼어버린 감자전분 덕분에 썩은 이 하나가 아말감을 채운 것처럼 잠시 밋밋해졌다.

옹심이를 한 번에 씹어 넘기면 말랑 떡 같아야 할 그 사이로 서걱거림이 느껴진다. 강판에 갈린 감자의 결이 남아있다. 여름이면 박을 씹을 때 느껴지던 상실의 질감이고, 겨울이면 고구마 사이에서 느껴지는 담뿍한 포만감의 질감이다. 아니다. 감자는 원래 이랬다. 봄에는 포실 거리고 , 여름에는 까실거리고 , 겨울에는 눅진하게 눌리는 맛이 있었다.  아버지는 늘 감자를 찾았다. 먹고살만할 때는 집안 식탁 한구석에 감자를 삶아놓고 오가며 한알씩 손에 들고 가셨다.  먹고사는 일이 곤궁할 때는 양껏 불려야 할 국이며 밥이며 감자가 박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감자바우 땅에서 사신 것도 아니시고, 기껏 살아봐야 신당동 산동네였으며 , 기껏 가봐야 화도읍 송라산 뒤편에서 자란 터. 어찌 보면 요즘 말로 콘셉트일 수도 있다. "너를 감자 몇 알로 잘 키워왔다 ". 당신의 부덕함을 감자로 위장하고 정상적이라고 위장 또는 그 바람을 소구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반짝하듯이 기억나는 '감자'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이름은 뚝섬. 동네의 이름은 그냥 뜨내기들이 자주 불러 이름으로만 남은 서울의 지명. 뚝섬으로 가면 80년대 그 시절. 한강 뚝방 거의 다 도착해서 '카바이드' 불빛으로 저녁을 밝히던 포장마차들이 있었다. 포장마차는 용두동 선반 골목이나 왕십리 밀링머신 길 사이사이에 있던 실비집과 비슷하게 소주와 안주를 파는 곳이었다. 메뉴들은 신선함을 가장한 얼음통에 박혀있던 생선 몇 마리. 달걀도 풀어 구워지고, 오뎅도 팔고.  아버지의 걸음이 늘 멈추던 곳은 뚝섬 뚝방 토끼굴 맨 앞에 있던 포장마차. 번철에 애기 감자. 그러니까 알감자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씨알들을 기름에 구워 팔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감자를 두어 봉지 산다. 뜨끈한 감자를 일간지 찢어 만든 봉지에 넣어주면 봉지는 금세 기름이 배어 나왔다. 손에 기름이 느껴질 거리를 걸어 한강으로 걸어가면 강가에  여러 대 묶여있는 낚싯배가 있었다. 노를 저을 수 있고 세명 정도까지 탈 수 있는 조각배. 그 배에 올라 아버지와 마주 보고 앉아있다. 배 위에도 카바이드 불이 담겨있는 분유통이 하나 달려있고, 배 바닥에는 적당히 물이 차오르게 만든 구멍이 있어 자칫 배를 무서워하는 이가 그 뚜껑을 열면 강물이 보이는 줄 알고 놀랄 수도 있는 그런 배였다.


여름밤 한강에서 견지대로 낚시하는 아버지를 괜히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소주라도 마시지. 나는 견지 대도 없이 낚싯배에 앉아 있었다. 알감자 한 봉지만 들고서 강물이나 보고 있다. 아버지는 기껏 두 봉지 산 감자 봉지 하나를 어디에 버렸는지 병소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나서는 솔 담배를 빨아 안주를 대신한다. 낚시는 조용해야 하니 나는 절레절레 고개 젓는 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 견지대 감는 것만 보고 있다. 감자는 다행이다. 씹어도 소리가 나지 않으니.  감자 한 봉지를 다 씹어 먹었을 무렵, 이 작은 배의 어창에는 누치 몇 마리, 이름 모르는 잡고기 몇 마리가 들어있다.  카바이드 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돌아가려고 노를 저어 뚝섬 강가로 돌아간다. 비린내도 적당히 돌고 , 이 지독한 여름밤도 적당히 식어간다. 이제 돌아가도 되는 밤이다. 아버지가 자세를 바꾸어 노를 저어가는데 , 앉아있는 다리 곁에 종적을 감췄던 감자 한 봉지가 꾹꾸 묶인 채 남아있다.  혹시 남겨놓은 감자였는지, 잊은 감자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는 투정을 부리는 성격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권하는 사람이 아녔으니까. 배를 대고 어창에서 물고기를 꺼내 나루터 주인에게 건네어주고 어창을 씻는다. 손에 남아있는 한강물의 비릿한 내음도 한강물로 가시고 나면 그럭저럭 끝났다.  아버지를 따라 뚝섬길을 걸어 나온다. 포장마차들은 카바이드 불을 줄이고 몇 집만 여즉 남아있다.  연탄 타는 냄새가 흐르는 길을 따라 걸어 나온다. 그믐달인지 초승달인지 여즉 배워주지 못해 구분 못하는 아이에게 달의 이름을 알려준다. 한강물 위에서 보던 달은 길게 물 위까지 내려와서 모양을 셈하지 못했는데 골목길에서 보는 달은 다 끊어내고 날카롭게 달만 보인다. 구분을 잘 못하고 있으니 쉬운 구분법을 알려준다.

"내가 널 데리고 나오는 날이면 배가 부른 날이니까 초승달이고,  낚시 못하는 날은 돈을 못번날이니까 그믐달이다"


낚시를 그렇게 자주 데리고 나오니까 여즉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하지 못하지.  아버지와 감자가 식탁과 일직선으로 보이는 날은 반달. 월급이 떨어져 가는 저녁날 빈그릇에 감자 흔적도 없는 날은 그믐달 뜨는 날. 어느 날 감자 몇 알 담겨있는 날은 초승달 뜨는 날. 그렇게 부르면 되나. 그렇게 '감자'를 왜곡하고 살았다.

옹심이 집 앞에 서서 감자 끓이는 냄새를 맡고 있으니 , 초승달 뜨던 그날 뚝섬 낚싯배 어창의 비린 물내도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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