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가 어둡다.
천호동 굽은 다리 근처 집. 성당을 지나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비슷한 모양의 집들이 모여있던 곳.
단층집인데 약간 이층이고 아래 지하는 연탄보일러를 놓고 있던 곳. 집주인은 작은 이모였다. 처음 우리 집은 그 집에 붙어있는 문간방이었다. 이후 이모집이 이사를 간 후 거실이 있던 본채에서 살게 되었다.
한낮에도 불을 켜놓지 않으면 늘 어두운 집. 옥상에서 크게 내려온 등나무 덩굴이 안방 창문을 거의 덮다시피 하고 , 마당에는 오래된 장미 넝쿨이 수돗가를 에워싸고 있는 집이다. 내가 자는 방은 부엌 옆 서재 속의 작은 방. 이모가 살던 시절에는 가족들은 문간방에 살고, 나만 특별 대우를 받았다. 서재에 붙어있는 방을 썼으니 , 그 집에서 방 두 칸을 쓰는 호사를 누린 것이다. 서재에는 사촌동생이 쓰는 책상이 있었고 , 책장에는 당시 나이의 어린애가 읽기 적합하지 않은 책들도 많이 있었다. 김홍신 최인호 고은 등의 책이 있었다. 물론 그 책들은 시절의 명저였으나 10살의 아이가 읽어봤자 뜻을 알 수 없는 내용들도 담고 있었다. 가령 예를 들면 , 김홍신의 인간시장에서 주인공 장총찬이 인도에서 묘령의 여자를 만나 미약에 취해 성관계를 갖는데 책중에서는 "끝없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 밤에 그 글 그대로 읽는 수밖에. 다른 쪽 벽에는 삼국지와 수호지 같은 장편물과 일본 소설 번역판이 올려져 있었다. 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 도 이때쯤 읽었던 듯하다. 물론 내용을 알고 읽은 것은 아니고 뜨문뜨문 내 나이의 지식수준과 엇갈리는 표현 때문에 다른 책에서 그것이 해석될 때까지 궁금한 내용으로 들고 있었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뭐 대부분은 여성잡지에서 해독되었으니 , 궁금했던 것 대부분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 건강다이제스트라는 잡지와 각종 산야초의 효능을 기록한 책들. 이모가 심한 디스크를 앓고 있어서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정기구독을 하는 책들이었다. 물론 내가 얻은 정보는 '서양 어른 여자의 수영복 사진'과 '몸의 정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침을 뱉지 않는다' '샤워 후에는 절대 수건으로 전부 닦아내지 않는다.' 같은 보신의 지식들. 거실을 건너 누군가 밤에 찾아올 일 없는 대 저택의 서재에서 나는 밤새 불을 켜놓고 책을 봤다. 책을 보다가 책상 밑에서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고 , 아침에 누군가 깨우기 전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새벽이 되어 해가 뜨기 전 즈음이 되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내가 자는 방에서 불을 끄고 내복만 입고 누워있을 때 일이다. 잠에 취해 눈꺼풀이 내려와 있을 즈음. 말려 올라간 배위를 누군가 커다란 손가락 두 개로 인형 놀이하듯이 걷는 손짓을 한다. 눈을 한 번에 뜨면 그 손가락이 보일 것이고, 손가락 끝에는 또 머리 짧은 아이가 놀자고 웃고 있을 것이다. 한 번에 눈뜨지 않는다. 아버지한테 혼날 때 쓰던 방법은 꽤나 유용했다. 눈을 최대한 게슴츠레 뜨면 손가락이 먼저 멈추고, 아이가 창문 쪽으로 사라진다. 창문은 사람 하나 겨우 나갈 공간. 그 아이가 사라지고 불을 켜고 나면 , 아이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보다 큰 것에 놀라 화들짝 해야 한다. 목조 대저택. 지은 지 너무 오래되어 나무 벽 사이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바퀴벌레. 내 엄지 길이보다 좀 더 큰 놈이다. 종이를 말아 겁을 주려 해도 이놈들은 겁을 먹지 않는다. 작은 방은 불을 꺼놓고 , 서재 불을 켜고 있으면 옷장 밑으로 기어들어가 어디론가 통하는 자기들 통로로 사라진다. 사라지기 전에 벌레를 놀라게 하면 심지어 날아오르기까지 한다. 가슴팍을 두어 번 깨물린 후로는 저항하지 않고 손가락, 아니 그 바퀴가 조용히 사라지기를 바라거나 서재에서 불을 켜고 있는 것이 낫다.
귓가에서 날갯짓을 하면 부웅 하는 소리가 들리니, 이후 자라는 동안 선풍기를 등지고 잔적이 없다. 그 큰 바퀴가 뒤에 있는 것 같아서. 서재에서 불을 켜고 밤새 책을 보는 건 바퀴들이 어두운 방구석으로 숨는 것을 곁눈질하며 밤새는 일이다. 부엌으로 나갈 수는 없다. 가족들이 사는 문간방은 현관을 나가 연탄광을 지나가야 하니까. 이 집에서는 나갈 요량이 없다.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두어 번 더 이상한 일을 겪었다. 거실로 온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았는데 , 분명히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아버지가 다른 날 보다 일찍 들어와서 "XX 왔다며, 그래서 과일 사 왔다."라고 하신다. 물론 그 이름의 친척 아이는 그 시간에 서울 반대편 자기 집에 있었는데 말이다. 오히려 아버지가 화를 내며 당신께서 그럼 누구와 통화했냐 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던 일. 다른 일은 지하실에 있던 나무문. 엑스자로 문을 못 열게 단단하게 막아놓은 것을 아버지가 뜯어보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는 지하실로 나오시지 않았다. 안방에 누구도 쓰지 않아 먼지가 쌓인 여닫이 벽장 , 그곳을 열고 나왔다. 뭐 이런 일이야 착각이 대부분이고 , 집 구조는 전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니 별것 아닌 일이겠지.
그 집에서는 늦은 밤이면 누구도 거실에 앉아있지 않았다. 물론 각 방에서 할 일이 많았으니 굳이 야밤에 거실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근사하게도 늘 달빛이 길게 드리우는 거실이었다. 누군가 거실을 걸어가면 나무 바닥이 심하게 삐그덕거렸다. 분명히 혼자 걸어가는데 삐그덕 소리가 한번 더 울리는 느낌도 나고.
덕분에 책은 실컷 읽었다. 해가 뜰 때까지 책 읽을 시간은 충분했다. 누가 와서 문을 밀고 들어올 일은 없지만 책상 의자를 놓고 그 위에 백과사전을 올리고 그 위에 앉아서 책을 본다. 등 쪽이 어둡지만 않으면 된다.
그때의 습관인가. 아니면 일회용 렌즈를 빼게 되는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 반복되는 것인지. 지금도 길고 어두운 복도가 있는 집에서는 꼭 불을 켜놓고 있다. 복도 끝자락에 먼지 뭉치 같은 것이 늘 굴러다닌다. 분명히 아까 청소를 한 것 같은데, 또 굴러다닌다. 신기하게도 현관 불이 들어왔다가 꺼진다. 고작 먼지뭉치 때문에 말이다. 또 게슴츠레 눈을 떠 본다. 사라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