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도 잡히지 않는다.
탁발승의 아들로 태어나 밥을 빌어먹고 살았다. 밥상 언저리에 앉아 있으면 시주받은 쌀이라고 굳이 거들먹거리는 보살의 손이 할매의 손. 납 찌꺼기를 끓여 파는 주지스님은 입꼬리 가라앉히면서 놋숟가락 면이 안 설까 그저 꾸역꾸역.
낮 걸음에 처마끼리 붙어있는 가난한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우연인 것처럼 늘 저녁시간에 맞춰 집으로 들어간다. 시주받다 마주쳤던 화냥년도 아닌데 늘 탁발승의 자식은 지 에미의 욕을 듣고 살았다.
아귀처럼 밥숟가락 노니는 저녁시간이면 욕지거리 덜 내려오니.
건넌방 당신을 위해 향을 피우는지 증조 할매의 방에서는 늘어진 전축에서 늘어진 천수경을 읊어주고, 언젠간 건너갈 도솔천 근처 길을 익히려는 듯 그리도 귀하게 여기던 탁발승의 소생이 살갑게 굴어도 등한번 돌려 쳐다보지 않는다.
똥지게도 쉬이 올라오지 못하는 산동네 중턱의 늙고 낮은 집. 장독대에 올라가서 옆집을 바라보면 내가 서있는 장독대 보다 가난하다. 무릇 장독이면 쌀 몇 톨만 있어도 물만밥에 장이라도 쉬이 섞어 굶지라도 말아야 할 텐데. 이 늙고 낮은 산동네 중턱은 저녁시간이 되어도 부엌 아궁이에서 불이 올라올 생각을 안 하니 서럽다.
골목에 불이라도 늦게까지 밝혀주면 골목이라도 돌며 하늘에 얽힌 전선줄로 철길 놀이하면서 다들 서럽게 잠든 시간에 몰래 들어가 몸을 뉘이면 좋으련만. 서럽고 가난한 동네는 골목에서 배곯아가며 뱅뱅이 하는 것도 하지 못하게 자정이 되기 전 커다란 등은 꺼버린다.
길 잃은 탁발승은 제 새끼 납 공장 집에서 잘 지내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오늘은 어딘지 모르는 탁주판에 앉아 시답잖은 농담으로 밤을 누빈다. 탁발승의 자식은 골목을 누빈다.
골목이 네모자로 이어져 있으니 산동네가 탑이면 밑에서 돌고 있는 여기가 무영탑의 아래다.
남의 밥 빌어먹는 중생들의 삶에는 늘 관심이 많은 게 탁발승이다. 제집 식구들 끼니가 없어 부엌 붙은 문간방 문 열고 남의 집 밥상 차려지는 것이나 보고 있는 줄 모르고 , 남의 집 쌀독에 한 줌이라도 부어주려고 일 배를 청하고 쌀을 얻어다 뿌린다.
화냥년 소리나 듣고 있는지 에미가 학교에 불려 와 고작 몇백 원 몇천 원 하는 공납금 대지 못했다고 그렇게도 멸시당하니, 피 섞인 것이 눈물을 불러올까 ‘다시는 에미가 학교에 오지 않게 하겠다’라는 다짐을 한다.
탁발승은 여전히 무영탑을 돌고 돈다. 신이 나서 무영탑을 돌아제낀다. 시주 얻어 배곯는 중생을 두어 번 구했으니 탁발승은 무영탑을 돌아도 좋다.
어느 한날 화냥년이 보살이 되어 뜨거운 공양을 매일 나른텨. 이제 시주 얻으러 굳이 내려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다. 탁발승은 탑돌이라도 하라며 슬쩍 소생에게 한마디 하고 바람 흐르는 날씨를 핑계로 다시 낮은 산을 내려간다. 탁발승의 소생이라 탑돌이만 해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돌다 보니 나는 보살의 손을 타지도 못했고 탁발승의 수염도 얻지 못했다.
바리때나 제대로 손에 쥐어주고 염주라도 꿰어주어 스무 해만이라도 넘기게 축원해달라고 속으로 빌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탁발승의 자식으로 태어나 오늘까지 염주 감는 법도 모르고 무지렁이로 살았다.
제때 머리를 깎지도 못했으니 기력이 약한 머리카락이 길다 길어 계집 머리처럼 흘러내렸다.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탑 근처만 돌고 돌다가 오후에 비친 퍼런 햇볕을 보고 벼락같은 박수를 쳤다.
나는 탁발승의 아들이다. 탑을 돌고 돌아도 그림자 한번 따라 밟을 수 없는 것은 무영탑이라서 그러했다. 내가 발을 잘못 디뎌 그림자를 못 밟은 것이 아니라 어차피 무영탑 아래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탁발승의 그림자를 쫓아 그리워하지 않아도 좋다.
내 그림자도 없으니 남길 것도 없다. 건넌방 할매가 옳았다. 진즉부터 천수경 늘어지게 듣고 도솔천 근처 지리라도 익혀두는 것이 오늘 탑돌이보다 좋은 일이다.
탁발승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무영탑 아래에서는 어차피 그림자를 밟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