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장 무말랭이 콩나물 고들빼기
길을 떠나 낯선 곳에 등을 비비고 살아. 비척대는 칡뿌리처럼 거칠게 말라갈 때 , 그런 날, 한날, 냉장고 구석에서 엄마의 반찬을 그리워해.
당신에게 그리운 것이 우엉 줄기 조림이라면 나는 콩나물 무침을 찾겠어. 콩나물 한 봉지에 그득 담긴 그것처럼 내가 할 이야기, 엄마가 해줄 이야기가 그득하니까. 오물조물 무쳐 담는 콩나물은 나이가 이렇게 들어도 그 맛을 따라 할 수가 없어.
우체국은 받지 못하는 김치와 게장. 농수로 안에 그득 담겨있던 참게를 잡아 몇 번 끓여낸 간장을 식혀 부어. 독 안의 게들이 잠잠해지면 다시 간장을 내어 다시 끓여 식혀. 그득하게 담아낸 참게 속젓 맛은 씁쓸하면서도 들큰해. 딱 소리가 나는 집게발만 빨아먹어도 쌀밥 한 그릇은 금방 비울걸? 아. 그때 주섬주섬 보자기 안에 보니 고들빼기김치와 무말랭이가 한통씩 들어있네. 무 말랭이 있잖아. 그거 맛있다고 밥통 곁에 두고 먹다가 피식피식 방귀만 늘었어. 무말랭이 방귀는 힘도 없고 냄새도 없어. 구들방 냄새 같아. 이제는 그런 집도 없지만 말이야.
한날 엄마에게 찬을 빼앗아 오면서 물어봤어. 내가 이만큼 가져갈 테니 얼마 드리면 값을 맞게 쳐주는 거냐고. 남기지 말고 먹을 만큼만 자주 가져가래. 값은 무슨. 엄마도 엄마한테 빼앗아 올 때 똑같이 물어봤데. 시골 할매에게 돈 몇 푼 쥐어주는 게 별 재미도 없는데 돈 줄 생각하지 말고. 입맛 잃지 말고 살라고.
그런데 그게 참 어려워. '입맛 잃지 않고 사는 거'. 나는 항상 고봉밥 비우면서 살 거 같았는데. 어느 날부터 한 공기가 참 버거워. 어쩔 때는 채우기 힘들어서 울고, 어떤 날은 실없이 배곯고 나서 울고.
그럴 때, 냉장고에 딱 그게 있었으면 좋겠어. 김치 색이 충분히 배어 겉에는 회색의 생채기가 있는 김치통. 그 안에 고들빼기. 무말랭이.
아랫칸에는 찰랑거리는 걸쇠 김치통. 그 안에 논두렁 참게가 출렁출렁 간장에 담겨서 말이야. 한 마리 꺼내 먹으려면 탁 쏘는 임계치가 느껴지는 그 게장 말이야. 그럼 냉장고 앞에 앉아서 밥 한 공기 다 비워도 속 거북하지 않을 텐데 말이야.
엄마도 엄마에게 받은 찬이 제일 그립지?. 입으로 씹어 넘겨주는 밥도 아닌데. 그게 왜 그렇게 그리운지 몰라. 여기서 잘살고 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