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힘
저녁밥 먹는 자리에서 감자떡 이야기가 나왔다.
"나 주말에 또 양양간다. "
"어? 그러면 가는 길에 감자떡 좀 사와라. 강원도 출신이니까 감자떡 맛있는 집 하나 정도는 알거 아녀?"
" 서울사람이라니까...."
동네 바보형은 강원도 출신이다. 정확히는 가족들이 , 조상이 강원도 사람들이다. 어릴 때 자란 곳이 강원도, 또는 자주 가야 하는 곳이 강원도.
" 야 근데 감자떡 , 국도에서 파는 거 있잖아. 말캉해서 투명한 그 쫄깃한 떡. 사실 진짜 강원도 감자떡은 그런 게 아니여."
"감자떡이 감자떡이지 뭐 다를 게 있다고."
"원래 강원도 동네 감자떡은 감자 캐다가 호미에 찍혀 상처 나거나 상품성 없는 거 수확하던걸 항아리에 모다 넣어서 발효한 다음 , 그 감자로 만드는 거야. 그래서 감자떡이 쿰쿰한 향이 나면서 회색빛이 돌아."
처음 듣는 말이었다. 티비 다큐에서 뭉탱이 만드는 법, 삼이랑 쑥 태워서 먹는 법, 강원도 음식 여러 가지 알려주긴 했어도 , 어디 요즘 강원도 고유의 음식 하나 찾기 쉬운가. 잘 정제된 음식들이 관광지 음식으로 남아있지.
" 마을 이장님 집이 언덕 가장 위에 있었어. 그리고 감자밭이 그 밑에 펼쳐져 있는데 그 고랑 사이로 음 그러니까 밭과 밭 사이 십자 길 사이에 항아리 하나 놓고 사방 밭에서 감자 캐다가 찍혀버린 감자들을 항아리로 던져 넣어서 그 항아리에서 감자떡 만드는 전분을 삭혀 만드는 거야. 요즘 그렇게 하는 곳이 어디 있냐.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먹어보고 못 먹어봤다."
이야기만 들었는데 , 그 쿰쿰한 전분의 냄새와 맛이 궁금해졌다. 전분이 삭혀서 쫄깃해진다라... 내가 사랑한 그 시절의 감자 떡보다 더 아름다운 떡이 있다니. 감자가 아름다운 시절에 살아왔던 강원도 촌놈이 부러웠다. 부탁이나 할 수밖에 " 주말에 양양 내려가면 꼭 비슷한 감자떡 찾아와라. 감자떡 무게만큼 게장 줄게. "
강원도 음식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고추장 물에 끓인 미역국. 바닷가 앞에 '아무도 안 주워 가던 섭을 끓인 국.
강원도 음식은 그렇게도 단아했다. 단촐한 것이 아니라 , 배경 넉넉하게 남겨진 산수화처럼 선이 굵었고 길게 그어진 맛이었다.
허난설헌 생가 옆에 테라로사 생긴 것처럼 단촐한 맛에 달달한 서울 맛이 더해져서 , 요즘은 그런 음식 없다.
강원도 출신의 말에 따르면 " 음식이 음식 같지 않아 창피해서 없어졌다"라고 하지만. 서울 잡것들 혀 짧은 맛에 맞춰주느라고 이리저리 선을 자르고 획을 눌렀다. 서울 잡것들 때문에 곰치국도 스뎅 그릇에서 전골이 되어버렸고, 섭국도 홍합탕이 되어버렸다.
하여튼 서울 잡것들이 돌아다니면 음식 하나 남지 않는다. 속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