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 짓는 사람 Aug 02. 2021

고구마라니까

함흥냉면집 맛집 추천 - 아야진 항 오미냉면.

냉면  그릇에 조선시대 이야기가 나오고 , 규합총서를 찾고, 이방인들의 스토리를 얹어서 근사한 60분의 이야기를 만든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냉면에 관한 이야기다.   반복하다 보니 냉면 플렉스의 등급과 가계도는 거의 완성되어 간다. 음식 하나에  위로를 맡기고 시간을 투영하는 . 사실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90년대의 소설이 나오던 즈음, 글쟁이들은 이제 더 이상 '여대생과 공장' '홀어머니의 모진 세월' '그 동네 흔적의 대부분은 전쟁의 생채기' 같은 주제에 끌려가지 않아도 좋았다. 장정일은 섹스를 멀리서 지켜보고, 마광수는 먹물 남성이 얼마나 흐물흐물 한지 자아비판을 하였으며, 김홍신은 몇 줄 안 되는 인도 여행기를 얹어 마초 낭만 스토리를 전했다. 청춘 스케치의 이규형은 '일본' 하나만 이야기해도 충분했다. 그때 즈음부터 소설에 나오는 음식들도 배곯이를 막는데만 쓰이지 않았고 , 음식 하나가 '명사'로 소설을 이끌고 나가기도 했다.


배가 불러가니 이제 의복을 정제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 혹시 그동안 내가 염치없이 살았는지 찾게 되었다.

밥상은 고급스러워졌고 ,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먹기만 해도 든든했던  집이 조선일보 문화판에 따로 기록되었다. 심지어 조선일보에서는 "조선일보 선정 맛집"이라는 별책부록을 만들기도 했다.(본편이 어떤 잡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장충동 족발 할머니도 티브이에 나오고, 강남 아귀찜 골목의 주인아주머니도 잡지에 나왔다. 우리는 족보 있는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족보가  쓰인 가게가 성업하는 것은 당연했고, 족보를  외우고 있는 지인들은 해박한 문화지식인처럼 보였다. 격식을 갖추고 음식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를 미화하고 싶었다. 사실 별거 없는 사람인데 , 집안에 무심했던 것을 '마치 시대에 복무한 것처럼' 포장하고 싶었다.  뻔하디 뻔한 스토리들을 어떻게든 미화하고 싶었다. 노조위원장도 당신께서 원해서 하신 것이고, 집에다 쓸데없는 팝송 테이프를 깔아놓으신 것도 사실 '  사람 좋아 보임' 위해 강매당해  .

그러고 보니 아버지 덕분에 중학교  손자병법과 수호지를 전집으로 읽었다는 고백도 테이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친구라는 사람에게 강매를 당했는데  금액이 너무 거금이라 당시 치킨집을 시작하려고 가발 만드는 일을 정리하시던 엄니가 한동안 가발 일을  해야만 했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책을 정말  읽었겠는가. 손에 잡히는  부분만 읽고 " 중학교  이런 책도 읽었네 "라고  것이지. 아버지의 불운한, 아니 불온한 역사를  포장해야 나의 가난이 이유를 갖게 되고 ,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었다.  서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은 나는 박식했다. 같은 결과물도 만드는 것이다.


별게 없으니 별거로 만드는 . 역산해보면 대한민국처럼 척박한 역사를 가진 곳에서 온전한 음식의 서사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 쉬이 알게 된다. 백성은 비루했고  힘으로 건건이 하나 해결 못하던 조선시대다. 단위면적당 소출되는 곡식의 양으로 백성이 사는 것보다 그냥 백성이 얼마  나오는 곡식에 맞춰 적당히 굶어 죽는 것이 어울리던 땅이다.

조선을 끝내고 일본에게 주권을 넘기고 ,  아래에서 과하게 서사하지 않아도 배곯음은 극심했을 . 더함에 더함으로 전쟁까지 겪고 30  지나서야 배급의 역사를 벗어나게  땅의 시민들에게는 ' 살아남는 '  우선이었지 ,  안에서 '몇백 년을 거쳐 종가의 맛이 그대로 전해지는 '  그릇의 음식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겠나 싶다. 아주 소수, 문헌에 나와있다는 음식들의 역사보다 캐주얼 사극에서 삶은 달걀 하나 잡곡 속에 숨겨서 먹는 신이  고증이 잘된  같은데 말이다.


이제 살만하니 족보를 찾아 여기저기 빈 곳에 꾹꾹 채우고 싶은 마음. 크게 공감한다.  

나의 아버지는 그저 반평생 이상 택시운전사였다. 더도 덜도 아닌 택시기사. 그때 즈음 한집 건너 한집에 있던 덜 성실한 아버지. 남의 집 살이 하면서 굴욕도 참아내고 , 해주고 싶은 게 있어도 아이를 먼저 설득하던 수줍은 아버지. 뭐 그게 어디가 어때서 그걸 굳이 포장하고 말이다. 빈곤한 생각이 가득해서 그렇다. 나는 그 가난하던 부모가 밥을 굶긴 적이 없는데 굳이 빈곤했다고 , 내가 알아서 살았다고 말을 한다. 기억을 잘 곱씹어 보면 부모가 양껏 챙기진 못해도 , 떨어진 신발같이 내버려두고 키우진 않았는데 말이다.


고구마 같았다. 아버지는. 달기도 달았는데 날이 가물면 쓰기도 무지 썼다. 대충 삶아도 달았고, 불에 던져 넣어도 재부스러기 뜨겁다고 안 하고 속만 잘 익어서 나왔다. 밥 대신 양껏 먹기에는 어려워도 밥 없을 때 고구마 두 알 정도면 얼추 허기는 건졌다. 딱 그 정도다. 할아버지도 무능력했지만 당신의 아들에게는 버릴 것 없이 충실했을 것이고, 평생 할아버지와 척을 지고 살던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면 "자랑할 것은 별로 없는데 그래도 본인은 잘 살다 가셨다"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함흥냉면 이야기를 티브이로 보다가 고구마 생각이 났다. 농마 국수였을 때는 감자전분이었다는데 , 지금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 말을 전하는 냉면집 2대가 약간은 미안한 듯이 이야기하길래 생각이 났다. '아니 고구마가 어때서 , 비슷한 전분이구만. 고구마 정도면 괜찮지'  

면만 질기게 잘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잘 이어져 왔다고 주변에서 칭찬도 하더만.


작가의 이전글 어떻게든 먹고 살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