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 짓는 사람 May 25. 2022

죽기 전 보고 싶은 사람.

내가 없어지면 너는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저질렀어요"

혹은 "저질러졌어요 " 

둘 중 어느 것이 되어도 무방하다. 무방하다라고 말해도 좋은 상황이다.

죽는 것. 죽어가는 것. 죽어있는 것.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중이다. 어느 쪽 인지, 어떤 것인지 손으로 가리키기가 어색한 상황. 분명히 내가 부탁했던 것은 " 소원이 있어요. 죽는 것까지는 억울하지 않은데, 작은 바람이 있다면 ,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게 너무 궁금해요. 그것만 알 수 있을까요?"


" 그러세요. 그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본인이 보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시간적 한계가 있고, 그 기억을 다른 사람이 보거나 전할 수는 없어요. "


444444.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직 죽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아뇨. 이미 생물학적으로는... 음 그러니까 귀찮네요. 설명이. 이미 죽었어요. 다만 제가 블랙박스 돌리는 것처럼 잠깐 보여드리는 것뿐이니까 별다른 의미는 갖지 마세요. 자 그럼 , 어디서 누구의 반응이 궁금한 것이지요.? 어머니? 아니면 동생? 오빠? "


아. 그러니까 지금 내가 기대한 것은 "내가 죽고 난 후에 나는 장례식장 뒤편에서 반투명 유리를 보면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 손님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혹시 오지 않은 친구들의 명단을 세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 아니네 바로 한 사람을 지정해서 봐야 한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 하루는 그렇게 무료하지도 비 능률적이지도 않았다. 회사에서도 당황해할 텐데. 그 모습도 봐야 하고, 친구들 하나하나의 메시지도 다 들어봐야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죽지 않을걸 그랬다. 물론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안 하고 매우 근사하게 말이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암 환자들의 모습이나 뇌졸중 환자들. 심한 혈압으로 급사한 선배들. 여러 죽음들이 샘플링되었지만 내 케이스는 살짝 벗어나 있었다. 차트를 다시 봐야 병명을 기억해 낼 수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죽어가면서도 속칭 '환자 색'을 띄지 않았던 것이다. 옥색? 청개구리 색. 아니다. 죽어가는 색이니까 광택을 빼야 한다. 그래 초등학교 때 운동장 뒤에 있던 화장실. 그 벽 하단부에 칠하던 녹색과 흰색과 타르의 조합 색. 평화롭고 조용하며 그렇게도 더러운 색. 그런 얼굴색 말이다. 나에게는 그 거무튀튀한 평화의 색이 오르지 않았다.


다시 물어봐야 했다. " 정말 죽고 나서 한 사람의 반응만 볼 수 있나요? 저는 한 이십 명은 궁금한데요."

"옵션이 있거나, 추가로 요금 내시거나 , 음 아주 드물게 빽을 쓰겠다는 분도 계신데요. 그건 저희 쪽 능력으로도 불가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아직 남아있는 전자기적 에너지를 흘리지 않고 뇌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병원의 의사들도 비슷한 것을 연구하고 있을 겁니다."


자상하게도 말해준다. 토 다는 것을 못하게 하는 화법인데. 누구냐고? 애초에 죽으려고 했을 때 , 뒤에서 인지 옆에서 인지. 암튼 앞에 보이지는 않는 존재인데. 소리만 들리더라고. 대충 배워온 지식으로 '그 동네에서 온' 존재라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있지. 머 지금까지는 내가 외통수에 걸린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한 다섯 명만 더 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죽는 것을 반복하면 가능할 수 있어요. 아까 한번 경험했던 그 통증만 참을 수 있으면. "


다시 죽으라고? 아까처럼 말인가. 트럭에 받치는 사고도 아니고 , 쇠꼬챙이에 뚫리는 급살도 아니고, 물에 빠져 숨이 막혀 죽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까 그 터널을 빠져나오는 기분을 다시 경험하라고?

작가의 이전글 엿 먹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