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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Jun 17. 2022

절연체

사실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보다가 든 생각인데.

드라마 마지막 회 즈음. 이렇게도 무책임한 혈연관계가 있는가 라는 물음이 들었을 때.

나는 저런 일이 있었을까? 하고 곱씹다가 끌어낸 기억.



십 년 전 딱 이맘때가 생각났다.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결국 화해는 없었다. 흰 화장이 어색하게 떠있는 얼굴. 평생을 살면서 입술을 붉게 칠할 일이 있을까.

망자의 길에 들어서야 겨우 얼굴에 분칠 한 번을 하는 것이다. 입술. 단호하게 다물어 사람人자가 가로로 눌린 듯한 모습이 어쩌면 할아버지의 시그니처 표정이었다. 환자로 오랜 침대생활 후 돌아가시게 되어서 다리를 억지로 펴야 하는 불편함을 없었다. 할아버지의 시점으로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납 공장 윤 씨. 납 증기를 근처에서 접해본 이들은 그 고소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얼기설기 얽혀있는 폼새가 칡이랑 비슷하긴 한데, 어디서 싸게 주워 온 납 뭉치였다. 제대로 사입해서 가공하지 못하고 , 그중에서도 리어카로 날아오는 원재료. 납덩어리를 주전자에 넣고 풀무를 땡긴다. 풀무는 "웽" 하는 소리를 내며 바람을 집어넣는다. 자기보다 한참은 삭아있는 아궁이를 부실 지경으로 바람을 처넣으면 , 흐느적 대던 불길이 불대처럼 솟아오른다. 기실 아주 높게 솟지도 못한다. 아궁이를 비웃을 정도만 솟아오르면 주전자에서 김이 흐르기 시작하다가 연통으로 수증기 뿜어내듯이 퍽 퍽 하는 소리가 그림이 되어 납 증기가 터져 나온다.


납을 틀 거리에 흘려 골드바처럼 납 블록을 만든다. 마지막에 인장을 찍는 것까지 똑같은데, 하나는 들고만 있어도 배곯는 사람 10명은 먹여 살리는 보물이지만, 납덩어리로 만든 그것은 "배곯던 이가 잠시 허기를 피할 정도의" 벌이만 유지해주는 납덩어리다. 막 찍어낸 납덩어리는 은처럼 반짝거리다가 금세 채(彩)를 잃는다. 신기하게도 납덩어리는 가난한 집 벽색깔처럼 금세 생기를 잃어버린다. 그래도 그것들을 한쪽에 켜켜이 쌓아놓으면 배곯는 생각은 잠시 사라지니 '급'은 달라도 덩어리 역은 좀 하는 것이다.


납덩어리 몇 개를 팔면 , 하루 종일 기방에 있을 수 있을까. 아니 기방같이 고급진 곳은 난닝구 차림으로 어깨만 불룩 솟아있는 공장 주인에게 자리를 허락할 일 없다. 기껏 갈 수 있는 곳은 신당동 대로 뒤편 대폿집 몇 군데,

하루 중 내가 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오후가 되어 신당동 대머리산 즈음으로 해가 지는 단순한 플롯이 진행되면, 대폿집 골목에서 허투르게 생긴 아줌마들과 허투른 농이나 주고받고 계신 할아버지를 찾아 집으로 끌고 오는 일. 술에 적당히 취해 있으니 , 끌고 오는 편이 맞다. 물론 내 팔은 길기만 하고 아무런 힘이 없고, 납 공장 윤 씨의 팔은 굵고 단단했으니 시늉만 끌려오는 것이고 , 결국 내가 한 팔에 매달려 오는 것.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이 정도 기억은 갖고 있다. 물론 그 이후 , 할머니가 죽고, 새로운 할머니가 들어오고 ,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그러다 보니 신당동에 갈 일이 없어지고. 나는 그 이후 한번 정도 할아버지를 더 봤다.

성남으로 혼자 이사하셔서 종합시장 언덕배기 반지하 (참으로 낭만적인 가난이다. 산동네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 지하에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평생을 살았으니 , 성실하게 인생을 낭비하셨나 보다. 낭만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게으름은 우리 집 남자들에게 없는 미덕이었다. 다만 무엇하나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낭만적이다.'라고 표현하지 않으면 그 비루함을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성남에서는 더 작은 부엌 한편에서 납을 끓이고 굳히고 있었다. 사실 이때는 아버지 몰래 찾아간 것이다. 두 분을 동시에 속이는 형상이었는데, 아버지에게는 할아버지 소식을 모른다. 할아버지에게는 아버지 소식을 모른다라고 했으니 , 내가 참 기민했다.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두 분의 실제 거주지는 약 5킬로 이내. 성남 종합시장에서 상대원 고개, 두 분 다 반지하. 서로는 의절해서 안보는 사이. 입술은 사람人자를 눌러놓은 팔자주름.


아버지는 한날 나에게 하소연을 한다. 보청기를 빼고 혼자 말하시면 , 나는 무조건 다 듣는 척을 하고 한 번에 이해하는 척을 해야 한다. 중간에 interpreter 가 있거나 완충재가 있어야 수월한 대화다. 혼자 떠드시는데 흥분해서 주, 목, 동 의 간단한 구조가 아닌 만연 흥분 체다.

추려서 요약해보니" 어느 날 누군지 모르는 전화가 왔는데, 인천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인천에 사시는데,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하려고 보니 아들이 있다고 한다. 그 아들이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내가 사는 것도 이모양인데. 머 이 정도 까지였다."

만연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의 비접촉이 당연한 삶을 살았고, 아들인 나에게는 "그 과정이 타당했음"을 강요 중이었다. 물론 나는 가끔 찾아뵙는 것으로 아버지에게 10% 정도 동의를 해드렸다. 어릴 때부터 받은 애정의 감가상각을 쳐서 대충 이 정도면 적절한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각자 전해 듣고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나도 아버지를 안 보고 지낸 지 몇 년, 할아버지를 뵙는 건 15년 정도 지났으니,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예상하지 않고 있던 일이었다.


상주는 아버지. 그러나 보청기가 없으면 화내듯이 대화를 해야 하는 아버지에게 상주 역은 유난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아버지를 저쪽 의자에 앉혀놓고 아버지의 말을 전하는 일을 해서 어찌어찌 상을 지내고 있었다'


염을 하는 과정은 50년생 아버지나 76년생 나나 처음 경험하는 일. 염의 마지막에는 장례지도에 따라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지도사의 목소리는 건조하면서 친절했다. "생전 고인께 하지 못했던 말씀을 전하세요. 자식분들은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세요. 아직 듣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늘 전선(戰線)이 있었다. 그 주름은 단호했고, 색이 짙었으며, 친절하지 않았다.  잠시의 시간이 흘렀을까. 전선이 깨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전선은 흔들리면서 팔자주름의 입도 무너졌다.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집시법으로 잡혀갈 때나 비슷한 표정을 본 것 같은데, 이번에는 여지가 없었다. 손을 뻗어 입술을 만진다. 생전 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붉은 입술을 말이다.

결국 화해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입술은 상기되었다. 원망의 농도는 짙지 않았다. 어차피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분리되어 살아왔다. 내가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이 더 많았다. 누군가 기억해야 한다면 내가 대리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버지도 내가 대신 기억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아버지는 그 이후 몇 년간은 나에게 좋은 낚시 파트너였다. 물론 그 위장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신께서 수직으로 된 혈연관계를 그렇게도 부정하고 살았는데 , 아들 쪽으로 그것이 해소될 리 만무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그럴법한" 분노의 이유를 찾았고, 나는 아버지를 찾지 않은지 벌써 십여 년이 넘었다.


몇 사람 건너 아버지의 현재 상황을 듣긴 한다. 석촌역 가스 충전소에서 우연히 소식을 듣기도 하고, 성인 나이트 대리기사를 하는 지인에게서 듣기도 한다. 별일은 없다. 나는 아버지가 여전히 건강하기 때문에 저렇게 완고하고 고집불통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유지한다 생각하고 있다.

가끔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사람 다 흰색 메리야스 한 장만 입고 뒤돌아서 있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근력도 좋고 구릿빛 등이 닮았다. 두 사람 다 그 등만 믿고 당신들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셨으니 말이다.


나와의 화해는 여전히 여유가 있다. 감정의 골과 시간. 두 가지 모두 아직 여유치가 있다.

한 가지 걱정은 내가 아침에 거울을 볼 때 , 내 입술도 팔자주름으로 지독하게 눌려 고집스럽게 보여간다는 것.

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안 닮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해왔는데. 실패다. 닮아가고 있다. 그 지독한 무책임함. 가난한 나르시시즘. 어찌 보면 내가 삼대쯤 되어서 인가. 더 지독하게 무책임한 삶을 살고 있다.


절연 덩어리인 납을 녹여 팔던 집 핏줄인데 , 기꺼이 뚫어버리고 있다. 아니 납처럼 너무 낮은 핑계 온도에서 녹아버리고 있다. 처음부터 무책임한 장사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 탓이 아니다.

납 증기가 고소하게 느껴진 그때부터 무책임하게 살라고 끌려온 것이다. 딱 맞는 이유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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