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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서본시인 May 19. 2023

도시슬로건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도시를 원하는가?

서울시가 도시 슬로건을 바꾼다고 연신 홍보를 했다. 시정의 활동을 설명하는 블로그에서도 길을 걷고 있는 건물의 전광판에서도 나는 그 정보를 쉽게 접했다. 이전 시장이 도시 슬로건을 바꾼다며 대대적으로 행사를 하고 최종안이 결정되는 대단한 선포식에 (하필이면 나는 그때 시청을 지나가고 있었다; 대대적인 이벤트에 비해 잔디밭이 썰렁한 객석으로 대비되었기에 꽤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상당한 규모의 이벤트가 시청광장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나는 의아한 반응으로 냉소를 대신했다. (아니 그때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또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고? 역시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는 뭔가 변화의 속도가 다르다; 익숙해질만하면 앞서나가서 잊힐 의도로 슬로건을 만든다는 목적이면 정말 합당한 이유이지 않은가!) 당시 사람들도 슬로건에 뭔 관심을 둘 대상이냐는 둥 무시하거나, 시정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인 관점을 그대로 읽고 불필요한 예산의 씀씀이를 비난했다. 멋지고 예쁜 그리고 쿨하다는 디자인의 지향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디자인을 목적을 둔 사용자와 환경에 의해 의미와 해석이 엇갈린다. 선명한 색상과 눈에 띄는 화려한 큐빅이 촘촘히 박힌 실크 드레스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장례식장이나 면접관 앞에서는 무례하거나 다소 과장된 코스튬처럼 보일 수 있는 것과 같다. (고인이 어떤 분이셨는지, 면접관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에 목숨을 걸 것처럼 과도한 집착을 하는 건 내가 아이스크림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슬로건 정책에 그만큼 열심인 이유와 보통의 시민의 사이에 조금도 와닿지 않는 괴리감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의 이미지 생성은 도를 지나칠 정도로 부풀려있고 과장되어 도처에 널려있다. 육즙과 갓 구워낸 듯한 따끈한 번이 모락거리는 메뉴판의 (심지어 요즘에는 대부분 디지털패널로 멋들어진 슬로 모션이 추가되어 바라보고 있으면 매혹적으로 빠져든다)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를 바라보며 나는 매력적인 시각적 풍미에 메뉴 선택권을 뺏기지만 (다만 나는 고기를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속아 넘어간다) 제공된 제품과 메뉴의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은 클레임을 걸지 않는다. 이미지와 실제의 간극은 현대의 자본주의에서 매우 당연한 기초예절이라는 듯이. 허풍 떠는 듯한 과장된 자신들의 한 줄 철학을 뻔뻔하게 광고에 삽입한다고 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그들의 제품이 본인들의 브랜딩과 다르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주도적인 소비자도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최선을 다할 것이며, 제품은 최고의 성능을 (도저히 신제품은 구세대 대비 퇴락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리고 당신의 자유와 폭넓은 유연성을 보장한다는 기업의 찬란한 미래구상은 그들의 포트폴리오 안에 규격 된 페르소나일 뿐 당신이 될 수는 없다. (당신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건 그들의 주문에 걸린 가상의 자아일 뿐) 

기괴한 (진보했다고 자청할 수 있는) 영문 조합으로 구성된 심오한 의미 탓에 비난의 피드백이 다수였던 과거의 슬로건은 어찌 되었든 새로 제작되는 시안에서 원래 도시의 의미를 뚜렷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모양새로 정리가 된 듯하다. 누구나 봐도 이해하기 쉽지만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만한 정도로. 내가 좀 의아하다 생각했던 점은 정해진 슬로건의 의미를 바탕으로 제안된 디자인 시안을 4개나 펼쳐내며(어찌나 애매한 선택지이던지..) 시민들의 투표를 받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시위 때문에 정차하거나 회차해버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가뜩이나 가당치 않은 기분으로 으리으리한 백화점의 한 귀퉁이에 붙어있던 대형 전광판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새 슬로건을 뽑아주세요라고 A안, B안 하면서 순차적으로 선택지가 화면에서 점멸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찌 보면 굉장히 파격적인 홍보가 아니던가!) 도심 한복판이 시의 엄청난 프로젝트로 마치 시민을 순간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정중한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시끄러운 도로가 정중한 회의실로 전락했다. 얼마나 기억 속의 비난이 두려운 것인지 나는 시의 목적이 또렷하게 읽어졌다. ‘이번 시안은 다수의 의견을 취합해 반영하여 결정할 것이므로 결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아 줘’라고. (하지만 이전의 시안들도 투표에 의한 나름 공정한 결과에 의한 것들이었다) 과연 디자인이 다수의 의견으로 선택이 되어야 하는 민주적인 결과물인지는 의문이지만 정책이라는 광장의 룰 앞에서는 예술이든 문화든 기본과 규칙에 의해 정돈되어야 할 대상인가 보다. 어떤 시안이 되든 맘에 드는 결과는 하나도 없겠지만 이곳저곳 덕지덕지 남발되는 슬로건을 바라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익숙해질 것이다. 감정의 순간이 여름날의 햇살아래 아이스크림 녹듯이. 그리고는 또다시 먼 미래에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자라는 새로운 시장과 함께 우리는 새로운 슬로건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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