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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서본시인 Jun 30. 2023

모기장 인간

여름이라는 계절의 순간에 정신이 바짝 든다

곤히 잠든 새벽녘의 차가운 공기가 열어둔 창문 너머로 스산한 상쾌함을 매듭짓듯이 살랑거렸다. 이번 주의 날씨는 장마 주간으로 시작된 뉴스와 함께 쏟아져 나온 걱정의 감정이 무색하게, 때로는 습한 기운을 보이다가 오늘처럼 갑자기 선선한 아침을 내보이기도 했다. 오락가락하는 건 기뻤다가 슬퍼지기도 하는 인간의 감정뿐만이 아니라는 자연의 흐름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이. 하지만 이내 나는 기분 나쁜 느낌에 사로잡히고서 곤히 잠든 나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4월에서 11월까지의 기간은 단단한 마음가짐과 함께 머릿속에 새겨놓고 기억해 두어야 할 연례 일정이다. 모기장을 설치하지 않고서는 잠에 들 수 없는 대단한 전셋집에 나는 이미 두 번째 갱신계약을 마친 세입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집에 입주한 나라는 인간은 초년생의 들끓는 자신감으로 거뜬히 물리쳐버릴 모기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며 단단히 맞서 싸울 요량이었다. 때문에 거추장스럽게 흐느적거리는 모기장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미니멀리즘은 곧 마음의 평안이라는 자기 철학 앞에서 '모기장'은 아무리 좋게 쳐도 공주침대를 장식하는 조형물(나는 10대의 여자아이가 아니다) 아니면 힐끗 봐도 거미줄 같은 지저분하게 치렁치렁한 물건으로서, 어떻게 보아도 나한테는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려와 거추장거리는 그물망 그 이상은 아니었다. 나는 여간 내 공간에 설치될 모기장을 좀체 좋은 방향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인터넷 검색창에 '모기장'을 입력한다는 것은 나약한 스스로와의 조우를 인정하는 셈이었으므로, 나는 아주 작은 타협점으로 훈증기만을 고집했다. (그것은 내가 이사오기 전부터 여름에 사용하던 대상이었으므로 나의 나약함을 측정할 기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기 효과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의 안식이 될 뿐) 모기가 장난이 아니게 공격성을 지니고서 집단으로 우리 집을 매일같이 배회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집이 자신들의 영역권이었으며, 혈액보충을 위한 노른자 상권의 핫플레이스이자 당신들의 집이며, 집합의 광장이었다. 내가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혹은 막아서기 위해 별안간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완벽한 밀실을 기도하며 (살인이 일어난다면 모기들은 피를 보게 되리라 기대했다. 당연히 그것은 물거품일 망상이었다) 모든 창문이며 외부로부터 연결되는 구멍은 전부 막아보기까지 했다. (모기 퇴치의 유명세에 솔깃하여 거금 들여 모셔온 구문초는 오히려 모기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기에 즉시 집에서 퇴출되어야 했다) 

나는 많은 시행착오와 결론 끝에 두 가지 가설을 내세우기에 이르렀다. 첫째, 모기는 순간이동 혹은 벽을 투과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혹은 내가 모르는 새에 기술을 연마하였다. 둘째, 나는 모기가 (여름한정기간 동안) 전세계약한 집에 세 들어 사는 동거인이거나 복수세입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동거인으로 취급하는 것 같지는 않다: 동거인의 피를 빨아먹는 행위가 어떻게 봐도 세입자를 대하는 친절한 의도로 읽을 수는 없기에) 모기로 인한 나의 숙면을 부차적인 문제였고, 우선 매일 밤마다 본인 동의 없이 이뤄지는 무법의 헌혈행위를 계속해서 묵인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펼쳐야 했다. 차선책이랄 것도 없이 물리적인 조건으로 가장 효과가 확실해 보이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서 모기장은 4월 중순 즈음부터 11월 말까지 설치되야만 하는 크리스마스의 트리처럼 침실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조형물이 되었다. 


모기장을 설치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한쪽을 애써 두들겨 튀어나온 부분을 무마해 보니, 이내 다른 한쪽이 튀어나와 새로운 문제의 포문을 열었다. 모기장은 침대 사이즈에 맞게 천장에 걸린 고리로 사면을 감싼다. 사람이 항상 침대에서 거주할 수만은 없으므로 내부에서 외부로 혹은 그 반대로 왔다 갔다 할 경우에, 나는 고개를 최대한 납작하게 숙이고 숙연한 마음으로 그물을 살짝 들어 올려 가장 낮은 자세로 이동을 실시한다. (이때에 군대에서 훈련한 포복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동 시에 헝클어진 치맛자락마냥 흐트러진 그물망을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모기장의 그물망 하단에는 작은 무게추가 마치 자신은 거미줄의 기괴한 조형물이 아니라는 듯 반짝이는 쇠구슬로 곳곳이 장식 마감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모든 모기들과 나와의 거리 두기는 일단락된 것 같지만, 어찌나 열성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그들의 애정공세는 그물망을 넘어서 더욱 열광적으로 바뀐다. 인기 스타와 한 번이라도 손길을 스치기 위한 팬들의 열망도 이런 모기의 기세에 명함을 내밀 수 없다. 그들은 틈새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살포시, 하지만 매우 재빠른 날갯짓으로 안과 밖의 구분을 분명히 하려 하던 나의 노력이 애석할 정도로 경계의 모호성을 추구하며 그물안쪽에 모여있는 것으로 그들의 의견을 대신했다. 이래서야 무슨 그물망의 효과를 어떻게 보겠는가. 오히려 사자의 서식지에 눌러앉은 방금 잡힌 신선한 제물처럼 나는 어이없이 물어뜯길 뿐이다. 

또한, 잠결에 눈을 뜨면 그물망 밖으로 아이컨택을 외치는 모기들의 다닥거림에 놀라서 온몸이 스산해지는 소름 돋음이 나는 더 이상 낯설지가 않게 되었다. (왜 여름에 공포영화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인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다) 나는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고 자는 이상한 습관이 있는데, 잠결에 점점 발목까지 침대를 벗어난다는 독특한 진행도 전개된다. 이런 나의 버릇은 발바닥 혹은 발가락이 그물망과 자연스러운 접촉을 만들어, 오매불망 수감 중인 재소자를 애틋하게 기다리던 가족처럼 모기는 그물망에 맞닿은 나의 살결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이런 습관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쯤 되면 나는 그들의 레이더에 딱 알맞게 떨어져 잘 익은 과즙을 선사하는 달콤한 혈액으로 가득 찬 과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집이 산에서 가까운 탓에 위치적인 조건으로 그들의 존재를 애써 묵인하려고도 해 보았다. 산이 근처에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고 (하지만 원체 나는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대도 높아서 공기도 좋은 거 같다고 에둘러서 (황사먼지의 희뿌연 하늘은 서울시민 누구에게나 매우 공평하다) 애써 생각의 전환을 해보았다. 아니 나는 그냥 '모기에 물리다'라는 표현이 없을 것 같은 핀란드의 라플란드로 육신이 사라져 버렸으면 했다. 테니스채는 없지만 버튼만 누르면 전기가 통하는 금속 그물이 촘촘하게 뒤덮인 전기모기채를 휘두르며 나는 오늘도 눈을 부릅뜬 채 그들과의 동거를 지속해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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