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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Jul 25. 2024

동행

하루야, 안녕?

‘동행(同行)’이란 함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초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에게는 동행자가 생겼다.

나의 동행자는 태어나서부터 빛과 어둠조차 구분할 수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동행자는 아담한 키에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청력과 타고난 목소리로 성악과에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이다. 내 역할은 대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이동, 수업참여, 식사 등을 함께 하는 것이다.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는 동행자를 보면 마치 걸음마를 떼고 스스로 걷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듯 흐뭇하다.

하지만 동행자와 걷고, 이동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긴 계단이라던가, 끊겨버린 점자보도볼록, 점자나 소리로 안내받을 수 없는 키오스크 주문 등이 그랬다. 시각장애는 자세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겉으로 구분하기도 어려워 마땅히 배려받아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시각장애인입니다.라고 외치며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받기 조차 어려운 등굣길이 허다했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얼마나 많은 불편이 따르는지 모른다.  

나의 역할의 최종 목적은  동행자가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유도하고 돕는 것인데, 그러기엔 사회의 제도적인 장치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열렬히 체감했다.


그렇게 힘겨운 1학기를 보내고, 드디어 방학을 맞이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동행자의 종강날 발목을 다쳐 반깁스를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동행자를 혼자 둘 수도 없어 깁스를 한 채로 동행자의 집으로 출퇴근을 했다. 그런 내게 동행자는 말했다.

"선생님~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웃을 것 같아요!"

"왜?"

"한 사람은 안 보이고, 한 사람은 다리 한쪽을 못쓰잖아요~"

"푸하하하~그러게. 우리는 정말 환장의 짝꿍이다."     

우리는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집 근처 햄버거가게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불편해진 다리 때문에 우리의 이동은 평소보다 느려졌고, 너무 빨리 바뀌는 신호등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설상가상 횡단보도에 음향신호기가 없었다. <음향신호기>는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노인이나 어린이 그밖에 교통약자에게 꼭 필요한 시설물이다. 나는 즉각 서울시 민원실에 연락하고 답을 기다렸다. 정확히 나흘째 민원실에서 답장을 받았고, 다음 날 출근하며 확인해 보니 새 음향신호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공무원분들께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니 새삼 감사드리는 마음까지 생겼다.


동행자가 다니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의 안내에도 문제가 생겨 신고한 적이 있었다. "몇 분 후 몇 번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라는 음성안내인데 버스 번호가 불려지지 않아 난감했다. 나의 동행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넘어갔지만 나는 웃으며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오로지 음성으로만 안내를 받고 이동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는 치명적인 불편함이기 때문이다.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고 지나치는 수많은 장치들이 누군가에게는 생활권 보장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리가 다치치 않았더라면, 나조차 불편함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일이다.




장애는 장애인이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불편함 없이 모든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제도와 장치를 만드는 것, 오히려 비장애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라고 생각한다.

동행자와 이동하며 매일매일 느끼는 점이 새롭다. 어디서도 배우지 못한 경험이고 그로 인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 동행자는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르지만 나 역시 동행자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인셈이다.

우리는 서로의 파트너이자 선생님으로 오늘도 함께 걷는다. 환장의 짝꿍이라 다행이다.


by. 예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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