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국수/ 선우사, 백석
<시인의 방은 꺼지지 않는다> 연재북으로 발행해야 하는 글이었는데,
제가 그만 일반 발행을 했나봅니다... ;; 라이테작가님이 댓글로 살짝 알려주셨건만.
작가님들의 소중한 댓글이 사라질것같아 발행취소를 고민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버튼을 잘못 눌러버리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엉엉)
(라이킷 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과 @초맹, @하치, @위엔디, @잡귀채신, @라이테, @Bono작가님의 댓글은 소중히 기억하겠습니다;)
글은 연재방에서 재발행함을 알려드립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단순히 위장이 비어 있어서가 아니라면, 대체 이 결핍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채널을 돌리고 휴대폰만 열어도 세상은 온통 먹방으로 넘쳐난다.
얼마큼 많이 먹을 수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요리를 만드는지, 대결한 뒤 꾸역꾸역 먹는다.
사람들은 화면 속 음식을 삼키듯 욕망을 삼킨다.
백석의 시는 읽고 나면 배가 부르다.
실제로 먹는 것도 아닌데 포만감이 느껴진다.
음식이 위장을 채우듯 시는 언어의 밥상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준다.
(주의할 점, 배가 더 고플 수 있음)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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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댕추가루 : 고춧가루의 평안 방언
*탄수 : 식초
*아르궅 : '아랫목'의 평안 방언
*고담(枯淡)하다 : 음식의 생김새가 탐스럽고 푸짐하다
*소박(素朴)하다 :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하다.
-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시의 언어가 매우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라 읽고 있으면 실제 냄새와 맛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당장 국수 한 그릇 비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다정한 이웃들과 삼삼오오 둘러앉아 먹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야말로 마음을 잇는 가장 소박한 잔치가 된다.
결국 마음의 허기는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
<선우사(膳友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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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도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 선우사(膳友辭) : 반찬 선(膳) / 벗 우(友) / 말씀 사(辭) 즉, 반찬 친구라는 말.
흰밥과 가재미를 친구로 생각하고 말을 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기하 노래가 생각났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가수는 마치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듯 노래한다.
남들이 가진 화려함 따위는 부럽지 않다고, 지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시인도 말한다.
-가난해도 서럽지 않고,
-외로워할 까닭이 없으며,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고.
나에게는 반찬친구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 없다고-
귀여운 허세 속에는 단출한 일상일지라도 삶에 충만함을 느끼는 시인의 태도가 담겨있다.
백석 시에는 유난히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전쟁과 가난, 일제강점기의 억압으로 먹는 일이 넉넉치 않았다.
하루 한 끼조차 챙기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고 음식은 곧 생존과 직결된 절실한 문제였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음식이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살아있음’에 대한 상징이었고, 고향과 가족이었으며, 이웃의 정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읽기만 해도 배부른 시란 없다.
(보기만 해도 배부를리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읽고 나면 허기졌던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금 살맛이 난다.
이것이 바로 시가 주는 포만감이다.
by. 예쁨
에피소드)
딸아이는 지금도 국수, 라면, 냉면 같은 면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열두 살 무렵 친구와 <냉면쏭>을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
뮤직비디오까지 만든다고 까불어댔는데, 아마 완성은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그때 받아두었던 녹음파일에는 명랑한 두 소녀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참고로 딸은 나를 닮아 음치다. … 미안‘-’)
<냉면쏭>
달달 시원한 육수에~
얼음 세 개가 동동동~ (동동~)
삶은 달걀 반쪽과 잘게 썰은 오이들 (예~)
겨자 3분의 1만큼만 넣으면 얼큰해지지요
사랑하는 친구에게 추천해줘요 (굿잡~)
저 냉면 육수에 통통한 면발이 떼들
먹다 너무 맛있어 놀라 어느새 벌써 세그릇째
여름엔 더욱 더 땡기는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살걱정 하지 말고 냉면 먹으러 가자~ (고고씽~)
*영상 속 이미지 출처 : pinterest , unsplash
문학은 허기로 닿아야 해요.
허기진 얘기는 골백번 들어도 늘 새로워요.
이 허기는 하느님도 못 건드려요.
- 무한화서, 이성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