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E.W. 윌콕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오늘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
부자와 빈자는 아니에요.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그의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잘난 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잖아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지요. 유수 같은 세월
누구나 웃을 때도,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
짐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을 지우고
걱정 근심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
- 엘라 휠러 윌콕스 (번역 장영희) -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 얼굴도 다르고, 살아온 이야기도 다르다.
하지만 시인은 아주 단순하게, 단 두 갈래로 사람을 나누고 있다.
평소 이분법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때로는 직관적인 비교가 더 즉각적으로 이해를 돕기도 하니까.
짐을 들어주는 사람 vs 기대는 사람
어쩌면 우리는 매일 그 갈림길에 서서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어하는 이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고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타인의 어깨에 무심코 기대어 나의 짐을 전가할 수도 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반복되고 선택하는 것이 결국 내 삶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은 불안과 분노, 불신으로 가득하다.
고마움의 표시로 음료수 한 잔을 건네는 일마저 주춤하고 망설여진다.
그러고 보니 진짜 도움이 필요한 순간조차 외면해버리거나 수수방관하는 일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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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편이 회사를 가던 중 자전거와 차량이 부딪히는 사고를 목격했다. (남편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음)
자전거에서 떨어진 사고자는 얼굴이 앳된 아이였고, 팔을 부여잡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고 한다.
운전자도 멀찍이 차를 세우고 보험사를 부르는지 대기 상태였고,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아이를 일으켜주거나 신고하는 이는 없었다.
결국 가던 길에서 다시 돌아온 남편이 119에 신고를 했고, 아이를 붙잡고 일으켜주며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하지만 아이는 휴대폰을 엄마에게 압수당한 상태였으며 절대 엄마에게 연락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한동안 설득하는 것도 일이었다고-
어찌어찌하여 구조대가 도착하는 모습만 보고 다시 회사로 가는 도중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남편이 사고 차주인줄 알았다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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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픽시 자전거 사고도 문제지만,
사고현장을 보고도 누구 하나 신고하거나 아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적인 상황이다.
다친 사람을 보고도 지나칠 수 있는 태연함과 무심함은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보다 더 공포스럽다.
그렇다면,
<기대는 사람>은 정말 나쁘기만 할까?
<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옳고 건강한 걸까?
삶이 그렇게 단순할리 없다.
누구도 매 순간 짐을 들어줄 수만은 없고, 때로는 다른 이의 어깨에 잠시 기댈 수 있어야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중요한 건 일방적으로 기대고 살면 안 된다는 것, 짐을 들어주되 자기 자신까지 잃지 말아야 하는 균형감 있는 선택이다.
(역시 이분법은 나하고 맞지 않아)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무게가 될 수도, 가벼움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은 늘 순간순간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오늘 하루,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by. 예쁨
나는 시각장애인이 원만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동행자는 기대는 사람이고,
나는 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아니다.
오늘 그녀는 나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녀에게 기대는 사람이 되었다.
*커버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