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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담 Oct 30. 2022

시댁이라는 둥지를 탈출한 며느라기

  나는 결혼 직후, 시댁과 꽤 가까운 거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난 출산과 육아를 하게 되면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랑의 출퇴근을 배려해 신혼집을 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댁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생활권이 겹치다 보니, 채소는 어디가 신선하고, 세탁소는 어디가 야무지게 잘하는지 등등 살림에 필요한 팁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결혼 후, 자주 시댁 식구들과 식사를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가서 밥만 먹는 것인데 힘든 게 뭐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는 늘 '소수'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신랑과 시부모님은 말 그대로 '다수'였다.  난 이 지역에 살아본 적도 없고 가족도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자문을 구할 '로컬'이 시댁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랑은 나보단 시댁과 더 우리 집 대소사를 결정해 올 때가 잦았다. 내가 봐도 내 정보보단 신랑과 시댁의 정보가 더 정확했다. 그때 깨달은 게 난 절대로 '로컬'의 정보력을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훗날, 우리 가족의 대소사를 온전히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싶었다. 난 정보력이 약하기 때문에 분명 시댁에게 의존할게 뻔했다. 


'너무 불리하다. 게임이 안돼 이건.'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가족의 울타리를 꾸리는 자식들을 보면 우리네 부모님들은 걱정이 앞서, 이것 저것 열심히 챙겨주신다. 하지만 그런 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놓쳐선 안된다. 그 '독'에 취해, 유아기 때처럼 다시 또 부모에게 의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분리'되어야 할 독립체들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리는 것이다.


  1년을 살다 보니,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신랑은 '원가정'의 울타리에서 아직 완벽하게 독립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때부터 내 가정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 신랑을 독립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아이의 부모로 성장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육아를 빌미로 퇴사하겠다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나 또한 가장의 역할을 짊어질 테니, 남편도 육아의 상당 부분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로, '며느라기'가 되지 않기로 다짐했다. 유명 웹툰 '며느라기'를 보면서 주인공인 며느리 사린이가 늘 답답하고 왜 항상 거절을 못할까 생각했는데, 나 또한 그런 상황에 놓여보니 사린이랑 별 다를 게 없었다. 싫으면 싫다고 분명하게 의사표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로, 이사를 다짐했다. 생활권이 겹치면 완전한 독립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기성세대와는 사뭇 다른 가족의 형태를 선택했다.

 

 신랑은 갑작스러운 이사에 불만이 많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도 맞벌이를 해주길 바랬던 본인이기에 나의 계획을 막진 못했다. 시부모님도 옆에 붙어살던 아들에 부부가 이사 간다고 하니 적잖이 서운해하시는 게 보였지만, 말리진 않으셨다. 나중에 신랑한테 들은 얘긴데, 시부모님이 주변으로부터 며느리 직장이 그만두기엔 아깝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고 한다. 정말 오랜만에 대기업 들어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둥지를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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