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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담 Oct 30. 2022

금쪽같은 내 남편 1

  신랑이 갑작스럽게 오늘 저녁에 지율이 하원 못한다고 했다. 개인적인 술 약속으로 말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내가 회사에서 일이 많은 날이라서 신랑한테 그 이틀은 되도록이면 약속을 피해달라 했는데, 지켜주지 않았다.


  오빠가 밤늦게 귀가하게 되면 나는 오후 5시까지 일을 최대한 많이 해놓아야만 한다. 지율이를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심시간 1시간도 15분에서 20분만 쓴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도 마치지 못한 채, 지율이를 데릴러간다.


  지율이를 데리고 오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정리하다 보면 7신데, 보통 그때 퇴근 보고를 올리고 아이를 재운 뒤, 야밤에 잔업을 시작한다. 오늘도 그러려고 했는데 원격이 말을 안 듣는다. 아뿔싸. 당장 사무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지만, 신랑이 술을 먹느라 집에 바로 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엄마를 불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울먹이는 나 자신이 가엾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의지가 되는 사람이 신랑이 아니라 엄마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엄마는 단번에 와주신다고 하셨지만 나는 끝끝내 거절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엄마께 죄송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다치거나, 급할 때 '엄마'를 부르면 울부 짖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서른이 넘은 나도 급하면 엄마를 찾기때문이다. 이건 본능인 것 같다.


  난 갑작스러운 오빠의 약속이 싫다. 일정이 한번 틀어지면, 내가 모든 걸 다 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두배로 더 힘들다. 오늘 내가 무리하여 많은 일을 했다고 해서 내일 배려받을 수도 없는 게 바로 내 상황이다.

결국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사무실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필이면 오늘 사무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강력하게 원격 근무를 권고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므로, 아침 일찍 일어날 계획이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신랑은 올 생각이 없다. 전화해서 빨리오라고 다그치는 것도 이젠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오늘이 그냥 평소와 같은 월요일이었다면, 오빠는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오고, 난 1시간의 여유 속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 길지 않은 시간조차도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게 서글퍼진다.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오겠다던 신랑이 잘 귀가했는지 고개를 돌렸지만 정돈된 이불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추운 날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신랑의 주사는 술에 취하면 잠이 든다는 것이다. 연애할 땐 그 주사가 이렇게 위험할 줄 몰랐다. 결혼하고 보니, 이게 왜 위험한 주사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차마 신랑의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는 못하고 메신저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오는 답은 아무도 없었다. 점점 초초해진 나는 어쩔 수 없이 시댁에 연락을 취했고, 아버님과 통화할 수 있었다. 아버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긴장했던 게 풀리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 아버님, 오빠가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 어제저녁부터 연락이 안 돼요."


그동안 결혼식을 제외하고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며느리의 모습에 아버님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셨다. 신랑이 어디서 모임을 가졌는지, 이것저것 여쭤보시고 본인도 알아보겠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날 달래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곧바로 휴대폰이 울려 확인해보니, 타국에서 살고 계신 형님의 메신저였다. 그때서야 불안함에 여기저기 연락을 취할 , 형님한테까지 내가 메신저를 보냈다는 것을 기억했다형님의 위로까지 받으니 이제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벽 4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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