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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담 Oct 30. 2022

워킹맘의 적은 워킹맘

  지혜님은 나랑 같이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인데, 직원들 사이에서 평판이 썩 좋지 못하다. 급하게 휴가를 쓰는 건 물론이고 본인이 해야 할 일도 남에게 미루곤 한다. 그녀가 이러는 이유는 당연히 '육아'때문이다. 같은 애엄마라 그녀를 두둔해 주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아기가 아파서 그러는데 이 일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그녀는 자신의 일을 대신해줄 '호구'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당첨된 것 같았다. 정말 해주기 싫었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가 나에게 부탁한 일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시간이 꽤 걸릴 거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의 인스타엔 행복해 죽겠다는 짧은 글귀와 함께 가족끼리 외식한 사진 한 장이 업로드됐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당했다.'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에 씁쓸한 표정으로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조직에 피해가 가지 않게끔 내게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가끔 그렇지 않은 워킹맘을 보면 내가 너무 미련할 정도로 정직하게 회사를 다니는 것 같아 우울하다. 한편으론 부러운 감정까지 들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태에 까지 이른다.


  마치 아이가 있는 것이 '면죄부'인 것 마냥 회사에서 해주는 배려를 남용하는 워킹맘들을 보면 회사가 다니기 싫어진다. 내가 열심히 일해봤자 결국 내 손으로 유리천장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책임감 있게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흔들린다. 정말 워킹맘의 적은 워킹맘인 것인가.


오늘도 어김없이 유리천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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