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사회주의 경제, 독일의 소득 불평등
독일은 유럽 최대의 경제 대국이자 복지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생각보다 깊고 구조적인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독일 사회가 지속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핵심 문제 중 하나다.
OECD 기준에 따르면, 독일의 소득 지니계수(세후 기준)는 약 0.29 ~ 0.31 (2024년 기존 0.295) 수준이다. 이는 유럽 평균보다는 다소 높은 수치로, 복지 지출과 조세 재분배를 통해 상당한 불평등이 완화된 결과다. 실제로 세전 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5에 가까운 수준에서 시작해, 이전소득(조세 및 사회보장) 반영 후 대폭 감소한다. 즉, 독일은 제도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0.295라는 낮은 지니계수만으로 독일의 불평등 실태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독일의 소득 불평등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더 자세한 독일의 경제적 불평등은 자산(wealth)의 불평등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최근 독일연방은행(Deutsche Bundesbank)과 DIW Berlin의 조사에 따르면, 상위 1% 가구는 독일 전체 자산의 약 30~35%를 보유하고 있다. 상위 10%는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소유하며, 반대로 하위 50%는 순자산이 거의 없거나 오히려 부채가 더 많아 순자산이 0 또는 음수인 경우도 많다. 독일과 유사한 경제 구조와 경제 수준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경우 지니계수는 2023년 기준 0.32-0.33 정도로 독일보다 다소 높은 수치이지만, 상위 1%의 자산 점유율은 23-26% 로 독일보다 7-9% 나 낮았다. 또한 비록 독일보다 일인당 국민소득은(2023년 기준 5만 3947달러) 낮으나, 성공한 사회주의 경제로 손꼽히는 중국은 (2024년 기준 일인당 국민소득 1만 3306달러) 상위 1% 자산 점유율이 약 30-33% 수준이다. 이처럼 독일의 자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훨씬 더 심각한 중국 수준이라고 볼 수 있으며, 자산의 세습과 집중이 지속될 경우 세대 간 계층 고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복지국가로 유명하지만 상위 1%의 높은 자산 점유율이란 오명을 써야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1990년 독일 통일에 기인한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간 경제 통합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자산 축적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뚜렷한 격차가 존재한다. 2023년 기준으로:
서독 가계의 평균 순자산: 약 29만 유로
동독 가계의 평균 순자산: 약 13만 유로
동서독 간 자산 비율: 약 45% 수준
다만 이 격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화되는 추세다. DIW 자료에 따르면 1993년 이후 동독 가계의 자산은 꾸준히 증가해, 2018년에는 서독 자산의 약 53% 수준까지 따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택 소유율, 상속 빈도, 금융자산 접근성, 노후소득 보장 등 여러 측면에서 동서 간 불균형은 뚜렷하다. 예를 들어, 주택 소유율은 서독이 약 53%인 반면 동독은 36% 수준에 그친다. 이는 부의 축적 및 유지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를 만든다. 사실 독일 500대 기업의 본사 위치만 보아도 500대 기업 중 464개의 본사가 옛 서독 지역에 위치한 반면, 단지 36개의 회사만이 동독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자. 지역적 불균형적 발전조차 중국과 닮은 꼴이다.
이러한 경제적 불균형은 단순한 숫자나 경제 지표를 넘어 독일 사회 전반에 걸친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분열의 심층적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동독 지역의 상대적 자산 열위와 소득 불균형은 정치적 급진화와 밀접한 연관을 보인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이라는 극우 정당의 지지율 상승이다. 2024년 기준으로 AfD는 동독 일부 지역에서 지방 선거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작센(Sachsen), 튀링겐(Thüringen),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등지에서는 지지율이 30%를 상회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단순한 이념적 선택이라기보다, 경제적 소외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 그리고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자산이 적고, 일자리 안정성이 낮으며, 교육·보건 인프라가 열악한 동독 지역 주민들은 “잊힌 시민들(Die vergessenen Bürger)”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기득권 엘리트층에 대한 반감과 체제 불신을 정치적 선택으로 표출하고 있다.
자산 불평등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자녀의 교육 기회, 주거 안정을 통한 자산 축적, 노후 대비 등 삶의 질과 미래 설계에 필수적인 요소들이 자산 수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는 인식은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산 불평등은 단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통합, 민주주의 신뢰, 그리고 정치적 극단주의의 부상이라는 문제로 연결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는 감각, 사회적으로 하위에 있다는 정체성, 세대 간·지역 간 불공정한 구조에 대한 분노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 사회가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단지 경제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성과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은 이미 비교적 강력한 사회복지 시스템과 재분배 정책을 운영하고 있지만, 특히 자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실질적인 정책적 개입이 절실하다. 단순한 소득 재분배를 넘어, 자산 축적의 기회를 넓히고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음은 향후 독일 사회와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들이다.
자산에 대한 누진적 과세 강화
현재 독일은 부동산 및 금융자산에 대한 자산세가 상대적으로 낮고, 상속세도 다양한 공제와 우회로가 존재한다. 자산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상위 부유층의 자산에 대해 보다 엄격한 누진 과세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상속세 제도의 공정성 강화
세습 자산이 대물림되는 과정에서 자산 불평등이 고착되는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상속세 면제 기준과 공제를 재검토하고, 탈루 방지를 위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자산 신고 및 평가 시스템 현대화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공정한 평가를 통해 세금 부과의 투명성을 높이고, 과세 대상의 누락을 방지하는 체계적 개편이 필요하다.
지역별 금융 서비스 불균형 해소
동독 지역은 상대적으로 금융기관 접근성이 떨어져 있어,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금융 인프라 확충과 함께, 금융기관이 저금리 대출, 신용보증 지원 등을 강화해야 한다.
스타트업 및 창업 생태계 조성
동독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혁신 창업 지원 프로그램과 벤처캐피털, 창업 보조금을 확대하고, 창업 교육과 멘토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 서비스 확산
온라인 금융 플랫폼과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확대해,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주민의 금융 접근성을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 및 사회주택 공급 확대
주택 가격 상승과 임대료 부담이 중산층 이하 계층의 자산 축적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늘리고, 사회주택 정책을 강화하여 주거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주택 구입 지원 프로그램 강화
첫 주택 구입자에 대한 세제 혜택, 대출 보증 확대, 저금리 대출 지원 등으로 주택 구입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도시 재개발과 균형 발전 촉진
동서독, 대도시와 지방 간 주택 자산 격차 완화를 위해 균형 있는 도시 재개발 정책과 지방 정착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 교육의 일상화
초·중·고 교육과정에 금융 지식과 자산 관리 교육을 체계적으로 포함시켜, 젊은 세대부터 자산 축적과 투자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성인 대상 금융 문해력 프로그램 확대
중장년층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금융 교육과 상담 서비스 제공으로, 금융 사기 예방과 효율적 자산 관리 능력 향상을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 활용 능력 강화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금융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온라인 금융 서비스 사용법, 투자 기본 원칙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독일의 자산 불평등 해소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복합적 과제다. 위 과제들은 정부, 금융기관, 교육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하여 추진해야 한다. 특히 동서독 간 불균형 해소와 자산 축적 기회의 확대는 독일 사회의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미래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를 통해 경제적 안정성과 사회적 통합을 동시에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