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달러가 너무 강해서 생긴 딜레마” – 트리핀 딜레마 이야기

by Dr Sam

하나의 나라가 세계를 책임질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전 세계 친구들에게 쓰는 공용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상상해 보자. 이 카드로 친구들은 물건을 사고, 장사를 하고, 때론 돈을 빌려가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당신 통장은 점점 마이너스다. 사실 이것이 기축통화 달러 국가인 미국이 계속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바로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는 복잡한 경제 용어의 핵심을 설명해 주는 비유다.


달러가 전 세계의 통화가 되면서 생긴 문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달러는 국제무역과 금융에서 표준 통화가 되었다. 각국은 달러를 갖고 있어야 석유를 사거나 무역을 할 수 있다. 마치 달러가 세계의 공용 통화가 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세계가 원활하게 거래를 하려면 미국이 끊임없이 달러를 공급해야 한다. 그 방법은 주로 미국이 무역적자를 내거나, 해외에 투자를 하거나, 외국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즉, 전 세계에 달러를 퍼뜨리기 위해서는 미국이 일부러 돈을 써야 한다. 적자가 나는 걸 감수하면서 말이다.


“세계의 중심”과 “건전한 경제”는 공존할 수 없다

이 딜레마를 처음 지적한 사람은 벨기에 출신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다. 그는 1960년대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려면, 미국은 항상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적자가 쌓이면 언젠가 사람들은 미국 경제를 의심하게 되고, 달러의 가치가 흔들릴 것이다.”

간단히 말해, 세계 경제를 돕기 위해선 미국이 스스로 약해져야 하고,
미국이 건강한 경제를 유지하려고 하면 세계 경제가 불안해진다.

이게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다. ‘딜레마’란 단어 그대로,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증상들

이 딜레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은 꾸준히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안고 있지만, 전 세계는 여전히 달러를 필요로 한다.

그 결과는?

미국의 국가 부채는 점점 늘어나고

전 세계는 미국 경제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신흥국들은 달러 부족에 시달린다.

그리고 위기 때마다 전 세계는 달러로 도망간다. 예컨대 코로나 팬데믹 초기나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 각국 투자자들이 안전하게 여기는 자산은 바로 달러다. 결국 다시 미국에 자금이 몰리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그럼 대안은 있을까?

많은 나라들이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자”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유로화, 위안화, 암호화폐 같은 대체 통화들이 논의되지만, 신뢰와 시장 규모에서 달러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고자 ‘디지털 위안’과 ‘일대일로’를 추진하지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된 점이 여전히 걸림돌이다.


균형을 찾기 어려운 세계경제의 구조

트리핀 딜레마는 단순히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돈의 구조적 모순이다.
한 나라의 통화가 전 세계의 통화가 되면서 생기는 이 모순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진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불안정한 구조 위에 서 있다.
달러가 흔들리면, 전 세계가 함께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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