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부자 나라 미국의 셧다운
미국의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억만장자들의 순자산은 매년 새로운 기록을 세운다. 그런데 정작 나라 곳간은 비어가고, 국채 발행은 멈추지 않는다. 매번 예산안 협상은 진통을 겪고, 정부 셧다운은 하나의 계절행사처럼 반복된다.
이 기묘한 역설, "부는 늘어나는데 나라가 가난해지는 현상" 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작은 정부, 큰 자유”를 내세우며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다. 세금을 줄여야 기업이 활력을 찾고, 경제 전체가 성장한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살아나는 듯 보였으나, 그 뒤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0년대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2001년과 2003년 감세는 중산층도 일부 혜택을 받았지만, 가장 큰 이익은 상위 소득자와 자본소득자에게 돌아갔다. 그 결과 연방정부 세수는 줄었고, 두 차례의 전쟁 비용이 겹치면서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확 낮췄다. 기업 투자가 늘고 해외자본이 돌아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붙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투자라기보다 자사주 매입이었다. 기업들은 세금으로 아낀 돈을 연구개발보다 주가 부양에 쏟아부었다. 결과적으로 자산가치가 더 올라가면서 상위 1%의 부는 크게 늘어났지만, 연방정부의 세수는 줄어들었다.
감세 옹호론자들은 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강조한다. 부자와 기업이 세금을 적게 내면 더 많이 투자하고, 결국 일자리와 소득이 중산층·서민층에게 흘러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의 데이터는 정반대의 그림을 보여준다.
자산 불평등 심화: 상위 1%가 차지하는 자산 비중은 1980년대 20%대에서 오늘날 30~35%까지 치솟았다.
임금 정체: 생산성은 올랐지만 중산층 임금은 크게 늘지 않았다.
재정적자 확대: 감세가 투자보다 자산시장으로 흘러가면서 세수는 줄고, 정부는 더 많은 빚을 져야 했다.
낙수효과는 경제 교과서의 가설로는 매력적이지만, 현실에서는 “부는 위로, 빚은 아래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왜 감세는 반복되는가? 답은 경제학보다는 정치학에서 찾아야 한다. 상위 1%는 막대한 정치자금과 로비력을 갖고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감세는 “부자만을 위한 정책”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중산층도 소득세를 조금 줄여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단기적으로는 다수 유권자가 세금 인하의 단맛을 경험한다.
이념적 갈등도 크다. 민주당은 대체로 “부자 증세, 복지 확대”를 주장하지만, 공화당은 “감세와 작은 정부”를 내세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미국의 세금정책은 큰 출렁임을 겪고, 그 사이 재정은 점점 더 취약해진다.
오늘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부채를 지고 있는 나라다. 그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과 마주한다. 성장의 열매는 누구의 몫인가? 나라의 빚은 누가 갚아야 하는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나라는 더 가난해지는 이 기묘한 공존은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정치와 제도의 결과다. 그리고 이 불편한 진실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