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이간질, 삼국지에서 동북아 국제정세까지.
“이간질(離間術)”은 고대 중국 병법에서 비롯된 전략이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이를 갈라놓는 술책”으로, 적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내부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방법이다. 『삼십육계』의 이간계(離間計)가 대표적이며,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치적 술책에도 활용되었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흔히 “누가 둘 사이를 이간질했다”라고 말할 때의 뿌리 역시 이 병법적 맥락이다.
이간질의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삼국지연의』의 동탁과 여포 사건이다. 권력을 쥔 동탁은 양자인 여포를 곁에 두었지만, 왕윤은 미인 초선을 내세워 두 사람 사이에 불신을 심었다. 결국 여포는 동탁을 죽이게 되고, 한 시대의 권력 판도가 바뀌었다. 이처럼 이간질은 한 사람의 칼보다 더 무서운 분열의 칼날이 된다.
또한 조조가 손권과 유비의 동맹을 흔들려했던 사례도 있다. 조조는 서신을 보내 “유비가 언젠가 동오를 삼킬 것이다”라는 의심을 불어넣으려 했다. 비록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적의 내부 불신을 활용하려는 이간계의 전형적 시도였다.
고대의 이간질은 적장의 귀를 속이는 말과 계략으로 이뤄졌지만, 현대 국제정치에서의 이간질은 훨씬 구조적이고 정교하다. 동북아의 삼국—한국, 중국, 일본—은 이미 역사·영토·경제에서 복잡하고도 아픈 역사적 갈등을 안고 있다. 중국이 인도 태평양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동안, 미국은 바로 이 틈새를 활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질서를 유지한다.
미국은 냉전 이후 일본을 아시아의 핵심 동맹으로 키워왔다. 일본의 군사적 제약을 점차 완화시키고,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전진 기지로 활용한다. 최근 미중 워게임에서도 미국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한국에 불리한 환경을 만든다. 미국이 일본을 “우선 동맹”으로 대하는 순간, 한국은 안보 문제에서는 일본과 협력하라는 압박을 받지만, 역사 문제에서는 외면당한다. 이는 한일 사이의 불신을 장기적으로 해소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구조적 이간계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명분 삼아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 구도는 한국을 곤란하게 만든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지정학적 파트너인데, 미국의 편에 서면 자연히 중국과 멀어진다. 더구나 일본과의 협력이 강조될수록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역사 문제를 덮은 채 안보만 강조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커진다. 미국은 이런 모순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균열 구조가 중국 견제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방치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AI와 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에서도 미국은 ‘Chip 4’ 같은 동맹 구도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 대만을 묶고 중국을 배제한다. 한국은 중국과 가장 많은 교역을 하고 있음에도, 미국의 압력으로 중국 시장과 적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한중 간 경제 신뢰의 붕괴를 초래하고, 한국을 미국 진영에 더욱 단단히 묶어둔다. 경제적 선택지가 줄어드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전략적 이간계 속에서 균형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사실 미국은 직접적으로 세 나라 사이에 거짓 정보를 퍼뜨리지는 않는다. 대신 갈등이 해소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구조적 틀을 설계한다. 한일 과거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안보 협력을 강요하고, 한국과 중국의 경제 의존을 약화시키면서 군사·기술 동맹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삼국이 하나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들고, 미국이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한중일의 연합 군사력은 미국과 싸워볼 만할 정도로 대단하나, 미국의 현대판 이간질 속에 절대 한중일의 협력은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다. 삼국지에서 왕윤의 한마디 계략이 동탁을 무너뜨렸듯, 현대 국제정치에서도 말보다 무서운 전략은 “분열”이다. 미국의 전략은 한국·중국·일본이 서로 협력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이간계라 할 수 있다. 동북아 삼국이 진정한 협력을 이루지 못하는 한,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며 중국을 견제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역사의 이간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