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가치 없는 시대의 환상

by Dr Sam

내재가치 없는 열광: 코인에서 부동산까지

얼마 전 집에 온 보일러 수리공에게서 평범치 않은 질문을 받았다. 안식년 중인 경제학 교수라고 소개하자, 그는 내가 안방에 있는 것을 보고 “이 시간에 집에 무슨 일로 계시냐”라고 물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는 “요즘 가상화폐(코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보일러를 보수하느라 지친 몸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주식 차트만큼이나 초롱초롱 빛났다. 그러나 나는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가 없는 것엔 투자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아쉽게도 그가 바랐던 거시 경제 전망이나 즉석 투자 팁 같은 이야기는 해주지 못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 또한 그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실제로 청년이나 현장 노동자 등 많은 사람들이 정체된 임금 속에서 한몫 단번에 잡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코인이나 고위험 자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최근 들어 한국의 암호화폐 투자자는 1,500만 명을 넘었고, 이들이 보유한 가상자산 총액은 100조 원을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하루 평균 암호화폐 거래대금은 15조 원가량으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한 규모(약 16.9조 원)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처럼 소득과는 무관하게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 속에서, 나는 이들 투자자들에게 ‘진짜 가치(real value)’를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코인과 내재가치

암호화폐 투기 열풍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에 대한 열광”*이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금이나 국채처럼 내재가치(예: 금속 가치, 정부 보증 등)가 없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비트코인이 “내재적 가치가 없으며 아무것에도 담보되지 않는다(…has no intrinsic value and is not backed by anything)”고 지적했다. 황금처럼 희소성이 가치를 준다는 주장도 있지만, 결국 투기적 심리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이다. ‘더 큰 바보’를 찾아 넘기는 베팅(greater fool theory)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암호화폐를 미래 투자로 열광한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상자산 육성 공약을 언급한 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 달 만에 비트코인 값이 두 배 이상 뛰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이런 급등락을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투자 대상이 단지 유행과 투기심리에 의해 움직이는지, 기업의 수익이나 실물 가치와는 무관한지를 냉철하게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은 값이 떨어져도 결국 그만큼 실물가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투자자가 사들일 때마다 가격이 오를 뿐이다.


임금 정체와 투자 열풍

현실적으로 가계 소득과 삶의 질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명목임금 상승률은 약 2.9%, 실질임금 증가율은 1.9%에 그쳤다. 30∼40대 젊은 근로자나 장년층 직장인은 높은 물가 상승에 월급 인상이 거의 따라가지 못하니 생활비가 빠듯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몇 배의 수익을 좇아 자산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특히 노후 준비와 미래 불안을 느끼는 중장년층, 안정된 직장이 없는 청년층까지 너도나도 똑같이 투기에 뛰어드는 것이다. 앞의 보일러 수리공처럼, 퇴근 후 집에서 휴대폰으로 주식과 암호화폐 시세를 확인하며 ‘단 한 방’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 보유자는 2024년 말 기준 1,559만 명에 이른다. 간신히 허리띠를 졸라매어 번 돈이 눈앞에서 금세 불어나는 것을 보면 실물 경제에 비해 가상 자산의 속성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달콤한 수익 뒤에는 위험이 따른다. 최근 급등한 암호화폐 가격이 언제나 오를지 장담할 수 없고, 언젠가 대거 매물이 쏟아져 나와 폭락할 위험도 크다. 예를 들어, 2025년 10월 초 한 달 동안의 급격한 조정에 의해 암호화폐 시장에서 수조 원대 손실이 발생했는데, 그 여파로 비트코인은 하루 만에 7%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상승은 지나치게 과열된 분위기”라고 경고한다. 명목 임금 몇 프로 오르는 것에 실망해 가상자산으로 몰리는 것은, 마치 거품 가득 찬 자산시장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동산 버블과 인구 감소

강남 한복판의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987년 완공된 노후 단지이다. 그런데 최근 이 아파트의 실거래 가격이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압구정 현대 1·2차 단지 전용 198㎡형의 매매가는 2025년 4월 105억 원에서 불과 두 달 만인 6월에는 117억 8,000만 원으로 치솟았다. 같은 강북권의 여느 아파트도 10~15억 원대에 거래되는 현실에서, 30년 넘은 단지의 가치가 갑자기 100억 원을 훌쩍 넘은 것이다.

이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지만, 인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전망에 따르면 2020년 5,162만 명이던 한국 인구는 2070년 약 3,765만 명으로 27.1%나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50년 후면 지금보다 1,400만 명 이상 줄어든다는 뜻이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한 가구당 경제활동인구도 크게 줄어들 텐데, 도대체 이러한 인구 구조 하에서 이렇게까지 집값이 오르는 현상이 정상적인지 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 수치는 주택 시장이 마치 유효수요를 넘어선 과열 상태임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기술주 광풍: 팔란티어의 사례

주식시장에서도 이성 대신 과도한 기대가 번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투자자들이 열광하는 미국 기술주 가운데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LTR)가 있다. 이 회사는 방산·금융·AI 설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강력한 성장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이 회사 주가는 약 1,700% 이상 급등하여 현재 183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 투자 매체도 “IPO 이후 5년 만에 주가가 1,700% 이상 폭등해 시가총액이 4,320억 달러를 넘었다”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시가총액이 어마어마하게 커졌지만, 문제는 수익(실적)과의 괴리이다. AInvest의 분석에 따르면 팔란티어의 주가수익비율(P/E)은 약 277배에 달한다. 이는 현재 영업이익 수준을 기준으로 하면 앞으로 수백 년간 이익을 모두 모아야 지금의 시총을 맞출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실제로 최근 1년 매출은 수십억 달러대로 빠르게 불고 있지만, 절대 금액이 아직 적어 고평가 논란이 크다. 당장 시장에선 “지금의 밸류에이션 수준에 도달하려면 몇 년의 영업이익이 필요할지 합리적으로 계산해 봤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앞선 보일러 수리공에게 내가 던진 질문도 비슷하다. 즉, 어떤 자산에 투자할 때는 그 기업이나 상품이 얼마나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낼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환율 급등과 경제 불안

이런 한편 대외 변수도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2024년 말 이후 1,400원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한국 재정당국도 “원화 1,400원대를 과거와 같은 급락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봐야 한다”는 발언이 나올 정도이다. 원화 가치가 약해지면 수입물가와 생활비가 오르고, 국내 경기는 더욱 위축되는 것이다. 과거 IMF 위기 때를 제외하면 거의 없던 수준의 고환율 상황이다. 이처럼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 만약 모든 사람이 돈이 되는 자산만 쫓는 ‘합법적 도박장’ 같은 시장 심리가 팽배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전문가 경고와 시사점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CEO도 최근 BBC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주식시장이 심각한 조정 위험에 직면해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향후 6개월에서 2년 이내에 급격한 조정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단순한 기술주 랠리를 넘어서 과열된 측면이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이러한 경고를 가볍게 넘겨봐선 안 되는 것이다. 다이먼도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의 가치를 지나치게 부풀려진 점을 언급하면서 “과도한 투자는 결국 손실로 귀결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말한 보일러 수리공은 나에게 “코인에 미래가 있냐”라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 자산에 정말 물리적·경제적 수익을 뒷받침할 내재가치가 있는가?” 오랜 기간 존속할 기업과 그렇지 않은 가상자산을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임금·물가·인구구조와 동떨어진 무조건적인 투자 열풍은 결코 긍정적 신호가 아니다. 학계나 시장에서 강조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진짜 가치가 없다면, 그 어떤 자산도 우리에게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거품과 기대에 취해 있는 자산시장 분위기 속에서, 냉정한 가치 판단과 장기적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모두가 상기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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