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거품 위의 현실, 그리고 환상의 호황

by Dr Sam

가을이 언제 있었던가 마치 겨울이 오는 마냥 식어가는 현실의 온도 속에, 미국 월가의 그래프는 뜨겁게 타오른다. 모든 투자가 미국을 향하고, 심지어 미국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향한 열풍이 전 세계를 휘감는다. 다우지수는 새 기록을 세웠고, 나스닥은 또 한 번 천정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래프의 선은 하늘을 찌르지만, 그 아래의 실물경제란 거리에는 조용히 ‘연체’의 그림자가 늘어간다.


연방준비제도의 통계에 따르면 신용카드 잔액 중 30일 이상 연체된 비율이 14 %를 넘어섰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매달 신용한도의 벼랑 끝에서 버티는 가계의 호흡 소리다. 카드 대금 결제일을 넘긴 메인스트리트의 침묵 속에서, 뉴욕 증시는 새벽마다 박수를 친다. 자본시장은 희열을, 실물경제는 체증을 겪는다.


PMI(이는 구매관리자지수로 50 이하면 제조업 경기 축소, 반대로 50 이상이면 제조업 경기 확대를 뜻한다.)는 50 아래로 내려앉았다. 금융업의 돈잔치보다 직접적으로 실물 경기를 반영하는 제조업의 기계음은 예전만큼 규칙적이지 않다. “확장”의 기준선을 밑도는 그래프는, 마치 스스로의 고요를 부끄러워하는 듯한 곡선을 그린다.
그러나 서비스업 지수는 여전히 55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물건보다 경험을 소비하고, 공장보다 카페에서 더 많은 돈을 쓴다. 산업은 식탁으로, 생산은 취향으로 옮겨갔다.

어떻게 직업을 창출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남긴 채.


부동산 물건들이 싸게 나왔다고 이메일이 온다. 압류율은 전년 대비 17 %의 증가했다. 이 작은 변화는 마치 겨울 초입의 찬바람처럼 예고의 냄새를 풍긴다. 금리 인상기의 늦은 진동이 이제야 담보대출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 집은 전세제도가 없는 그리고 월세가 수백만 원씩 하는 미국인에게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존재의 상징이다. 그 집이 은행의 서류더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숫자의 손실이 아니라 삶의 균열이다. 한쪽에서는 부동산 ETF가 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제 집이 문을 닫는다. 그 모순이야말로 이 시대의 초상이다.


지표로 본다면, 미국 경제는 여전히 “건강”하다.
실업률은 낮고, 주가는 높고, 소비는 끈질기다.
그러나 이 호황은 시스템이 풀어 되는 돈의 유동성이란 거울 위에서만 빛난다.
실질소득은 정체되고, 저소득층의 연체율은 두 배로 치솟았다. 소비의 불빛은 크지만, 전기세는 점점 버겁다. 우리는 지금 ‘호황의 심리’를 소비하며, ‘불황의 본질’을 축적하고 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라면 오늘날의 이런 상황을 ‘절망의 미학’이라 불렀을지도 모른다. 겉보기엔 충만하지만, 그 충만함이 오히려 내면의 결핍을 감추기 때문이다. 오늘의 증시는 어쩌면 하나의 집단적 자기 위안의 그래프다.
현실의 불안을 수치로 포장한, 정교한 신기루.


경제는 숫자 이전에 ‘관계’의 철학이다.

생산과 소비, 부와 빈곤,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
그 균형이 깨질 때, 사회는 ‘풍요 속 결핍’이라는 모순의 장르에 들어선다.


지금의 미국이 그렇다.
PMI는 수축을 말하고, 카드 연체율은 피로를, 압류율은 균열을 속삭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환호한다.
이 모순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진짜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상승하고 있을 뿐인가?”


시장은 믿음으로 움직인다. "오를 것이란 끊임없는 믿음" 숫자가 다시 현실을 따라잡는 날,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프의 상승선은 신앙의 산물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불안을 가격 화한 것이었음을.


지금의 경제는 “지표의 번영”과 “생활의 불황”이 교차하는 시대다. 화려한 차트 뒤에서 울리는 신용카드 결제음, 그리고 압류 통지서의 바스락 거림은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성장은 언제부터 사람을 떠나, 숫자의 일이 되었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