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속의 투표권, 인간의 품격을 소비하다
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미국의 패스트푸드점 칙필라(Chick-fil-A)를 찾았다. 한 번쯤은 가봤을 법한 체인점이지만, 이곳은 여느 패스트푸드점과는 달랐다.
점원은 주문을 받으며 늘 “My pleasure(기쁨입니다)”라고 답했고, 그 말에는 단순한 매뉴얼이 아닌 진심이 묻어 있었다. 아니 진심이었다.
음식의 맛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친절함’이라는 무형의 가치였다.
칙필라는 기업의 모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단순히 햄버거가 아니라 친절을 파는 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직원들에게 단순한 임금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
대학 등록금을 지원하고, 근무 환경을 인간적으로 개선하며, ‘일하는 사람’의 존엄을 존중한다.
나는 가족 넷이서 햄버거 식사에 10만 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이상하게도 지불의 아까움보다는 만족감이 가득하다. 왜냐하면 그날의 식사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선한 기업에 대한 지갑 속 투표’였기 때문이다.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사느냐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지지하느냐의 문제다.”
우리가 평생 소비하는 금액은 약 30억~4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에서 가장 꾸준하고 강력한 ‘시장 참여 행위’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소비의 흐름이 단지 가격과 브랜드의 전쟁으로만 흘러가야 할까?
우리가 어느 커피를 마시고, 어느 옷을 입으며, 어느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느냐는
곧 “어떤 경제철학을 지지하느냐”의 표현이다.
친절한 기업, 정직한 임금체계, 지속가능한 환경, 직원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기업이 있다면
그곳에 돈을 쓰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경제적 윤리의 실천이다.
오늘날 경제의 언어는 점점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대체되고 있다.
AI는 시장을 예측하고, 투자 알고리즘은 초단위로 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땀과 감정, 그리고 ‘친절’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AI가 만들어내는 효율은 분명 위대하다.
그러나 효율이 인간을 대체하는 순간, 경제는 단지 기득권의 숫자 놀음으로 전락한다.
경제는 인간을 위한 도구이지, 인간이 경제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다.
기계가 계산할 수 없는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친절, 성실, 공감, 따뜻함 —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소비 행위다.
AI가 넘실대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경제철학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지갑 속의 선택이 곧 세상을 바꾼다.
한 번의 클릭, 한 번의 결제, 한 번의 식사에서 우리는 더 나은 경제 생태계를 선택할 수 있다.
친절을 파는 기업이 살아남는 사회,
직원의 삶이 존중받는 기업이 성공하는 시장,
기계의 논리보다 사람의 마음이 존중받는 경제.
그런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인간 중심의 AI 시대’의 진짜 출발점 아닐까.
결국, 경제란 주식이 오로고, GDP가 오르는 숫자의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이야기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는 우리의 소비란, 우리가 어떤 세상을 응원하겠다는 조용한 선언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