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없는 자본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을 지지하는가
한국땅(남한땅)보다 100배 정도 큰 미국에서조차 1–2일 배송( 아마존 Prime 배송)은 너무나 당연한 서비스다.
하지만 나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 속도를 위해 한밤중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새벽을 통째로 갈아 넣어 유지되는 편리함이라면,
나는 그것을 소비하지 않겠다고 오래전부터 결심했다.
미국에 상장한 애매한 국적의 한국회사 쿠팡이 새벽배송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 또 수만 명의 노동이 더 갈아 넣어지겠구나.”
과거 주황색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던 시절,
삐삐에 음성을 남기고 다시 확인하기를 반복하며 새벽이 오기만 기다리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사실 그렇게 빨라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함께 확산된 플랫폼의 편리함은 중독적이었고, 결국 ‘새벽배송’이라는 속도 경쟁의 정점에 이르렀다.
나는 조금 더 부지런히 살기로 하고, 그런 서비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편리함을 거부할 자유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장은(기술성장이든 경제성장이든) 누구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가?”
한국에서 쿠팡의 매출과 이익이 증가하면, 그 수익은 어디로 흘러갈까?
쿠팡은 미국 NYSE에 상장한 미국 법인이다. 한국의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 만들어낸 이익은 쿠팡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고, 주가가 오르면 그 이익의 대부분은 미국·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혹여나 배당을 한다 해도 그 배당금은 한국이 아닌 해외의 계좌로 송금된다.
반면 한국에는 “고용 증가”라는 이름의 노동 강도가 높은 일자리가 남는다.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포장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삶을 갈아 넣어 유지되는 서비스 구조가 더 강화될 뿐이다.
물론 오늘날 세계 경제는 비슷한 구조다. 애플·테슬라는 세계 곳곳에서 생산하지만
이익은 미국 자본시장에 집중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자본은 국적이 없고, 소비와 노동만 국적을 가진다.”
현대 세계 경제를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다.
편리함이 가져온 구조적 질문 -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형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지 못한 대가인가?
국내 소비가 해외 투자자의 자본 축적을 돕는 구조는 지속 가능한가?
소비의 편리함과 자본 유출 사이에서 균형은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지금 한국 유통 시장은 테뮤·쉐인·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발 초저가 플랫폼의 파상공세를 맞고 있다. 가격 경쟁력 앞에서 쿠팡은 더 많은 물량, 더 많은 사람, 더 빠른 속도, 즉 더 많은 노동력을 갈아 넣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구조로 밀려난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 구조는 매우 친숙하다.
미국의 안방에서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기업에 투자하고,
편리한 플랫폼으로 그들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이 흐름이 과연 옳은가, 지속 가능한가,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세계화에서 블록화로, 그리고 다시…
인터넷의 등장은 세계화를 폭발적으로 촉진했다.
하지만 AI 시대의 출현과 함께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세계 경제의 블록화를 강화하고 있다.
국경 없는 자본, 국경 있는 노동. 이 불균형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을 마주한다.
국적 없는 자본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에 투자하고, 무엇을 소비하며,
어떤 가치에 우리의 노동과 시간을 내줄 것인가?
경제가 던지는 질문은 늘 숫자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질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
내가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은
결코 절대로, 사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