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에 임하는 마음가짐

by 유이나

글을 쓰는 게 참 오랜만이다.

그간 수업도 듣고, 알바도 하면서, 나름 바쁘게 지냈다.


마케팅에 대한 무료함은 조금 무뎌졌다.

뭔가를 기획하고, 실행시키는 일은 확실히 재밌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알바를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업무나 그 과정이 완전히 이해되어야 자신감이 생긴다. 그때 비로소 일에 대한 보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기획에 재능이 있을까.


나는 앞뒤 상황의 문맥파악과 인과 관계를 명확히 하는 일을 잘한다. 사람들의 심리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잘 찾아낸다. 리더쉽이 강해 팀원들을 이끌어 협력하는 것을 잘한다.


다양한 공모전을 나가고, 기획서를 만들어보니 확실히 재능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특출난가에 대한 확신은 아직 잘 모르겠다. 대신 나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라서 어딜가나 1인분 이상의 역할은 해낼 것이다. 22년동안 지켜봐왔으니, 나 자신에게 그 정도 기대는 있다.


다른 직업군을 탐색해봐도 마케팅만큼 현실적인 흥미가 느껴지는 분야는 없었다. “경찰, 심리상담가, 선생님, 승무원, 제빵사••” 그 외에도 다양한 일에 가벼운 흥미는 있지만, 다같이 머리쓰고, 실행시키고, 뛰어다니고, 설득하고. 생각해보면 나에게 마케팅만한 것도 없다.


이번에 학과 전공 수업에서 'KB다이렉트'를 대상으로 디지털 브랜드제안서를 만들었다. 1학기때는 'ZARA'의 남성의류 커뮤니케이션 제안서를 만들었다.

우리 전공 교수님은 현재 광고대행사 대표로 계시는데, 이번 발표를 마친 당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다.


"오늘 기획서 어디까지 너가 만든거야?"

"너는 취업 생각 있니?"


학과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작년에도 부회장이였던 선배가 교수님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일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취업을 도와주겠다고 하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연락을 받고 사실 조금 의아했다. 나는 항상 윗사람을 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을에 입장에 있는, 얻을 게 있는 관계일때 더욱 그랬다. 괜히 과하게 격식을 차리다가 오히려 나답지 못한 모습으로, 후회만 남는 경우가 잦았다. 물론 성격상 잘 보이려고 애쓰는 행동들이 왠지 가면을 쓴것만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그래서 보통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교수님과의 접점이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

한번은 코삭 대학생 광고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결과 발표 전에 교수님에게 미리 평가를 부탁드린 적이 있다. 또 한번은, 내 진로 구체화를 위해 현업에서의 '브랜드 마케팅'에 관해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번, 질문과 답만 듣고 미련없이 자리를 떴다. 취업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니, 나에게 있어 교수님은 그냥 똑같은 사람이였다. 내가 하고 싶은 분야를 먼저 공부하시고, 현업으로 하고 계신 선배같은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교수님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더 궁금한 것들을 편하게 여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태도가 교수님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니.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지만, 뭔가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기회로 돌아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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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마케팅'의 방향을 고민중이었던 나에게 교수님은 확실히 정해지면, 한번 알려달라고 하셨다.

워홀과 인턴. 뭐가 내게 더 필요한 경험일까.


사실 내 워홀의 목적은 커리어적인 메리트 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세계 확장'이 목표였다.

중학교 3학년 때, 독일에 다녀온 이후로부터 계속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독일에 다녀온 후,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목표가 생겼다. 일본을 혼자 다녀온 후 혼자 해외를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몽골을 다녀오고 생각치도 않았던 워홀을 준비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내 삶의 크나큰 사건들이 연쇄작용처럼 모두 해외경험으로 인해 결정됐다.

워홀은 또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내가 가장 기대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현재 미디어에는 매일 같이 범죄와 폭력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며, 특정한 사건들이 부각된 결과물일테지만 그로인해 사회적 불안도가 증가하고 있다. 차별과 분노가 가득한 뉴스들을 보고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더욱 더 그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고, 동등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보고,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과 관계를 쌓고 싶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 이외에, 내면의 보석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 워홀이라는 과정은 나와 잘 맞고, 비슷한, 한편으론 내가 따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으러 여행을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들을 얻는 게,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버팀목이 되어줄거란 확신이 있다. 그게 내가 워홀을 떠나려는 가장 큰 이유였다.


사회초년생들에겐 수많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아니, 그 앞에서는 누구라도 갈대가 된다.


1) 워홀을 다녀와도 기회가 있겠지

교수님에게 처음 그 연락을 받았을 때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워홀을 가는 건, 1년간 준비한 나에게 당연한 결과값이였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날 저녁 부모님에게 자랑만 했다.


2) "저 방금 비행기 취소 수수료 알아봤어요"

우리 학과 선배중에 내가 인간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최근에 독일로 유학을 가셨다. 마침 연락이 닿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여쭤봤다.


"교수님께서 ~~이렇게 연락을 주셨는데 워홀 가지 말고, 이 기회 잡아야 할까요?"


감사하게도 선배가 정성스레 조언을 해주셨다. 결론적으로 '워홀은 언제든 갈 수 있고, 인턴 기회는 지금 뿐이니 인턴을 하면서 워홀을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왜 이 당연한(?) 이치를 생각하지 못했는지. 왜 출국이 2개월 남을때까지 이 안건을 미뤄온건지.


다음 날에 바로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부모님께서도 사실 그 기회가 아까웠다며, 내 뜻대로 하게 해주셨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그래 잘 선택한거야. 나는 그날 교수님에게도 연락을 드렸다.


"교수님! 저 대행사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혹시 저 취업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3) 취업 vs 워홀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워홀을 미루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고는 자취방에서 본가로 올라갔다.

어딘가 기분이 찜찜했다. 그래도 나름 1년 동안 준비하던 탓일까? 2개월 후만 해도 출국 예정이었던 내가 갑자기 인턴하러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니. 실감도 안나고 왜인지 아쉬웠다.


그날 밤, 아빠와 꽤 긴 대화를 나눴다. 나는 최종적으로 '브랜드 마케터' 일을 하고 싶은데, 해당 직무는 TO가 적어 대행사 AE에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신입시절 대행사를 경험해보는 것이 전체적인 일의 프로세스를 배우고, 맞는 분야를 발견하기에 유리하다는 현업 마케터분의 조언이 있었다. 그래서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대행사'에서의 인턴 기회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지방대생인 나에게는 회사의 규모, 회사의 월급 보다도 현업이 돌아가는 과정과 실무 경험이 중요했다.(알바와 마찬가지로 내가 해야할 일을 모두 해낼 수 있을때, 그 일을 즐길 수 있으니까)

일단 마케터로써 필요한 과정과 정보, 기술을 다 배우고 내 몸값은 내가 증명해,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려 애썼다. 나에겐 워홀도 필요했지만, 인턴도 필요했다. 둘다 후회는 남겠지만, 최대한 후회가 덜 남을만한 선택을 하려했다.


-


결국 나는 워홀을 선택했다.

워홀 후 나의 성장과 가능성을 믿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배팅하기로 했다.


워홀을 언제든 지원은 할 수 있었지만, 대학교 3학년인 지금 가는 워홀은 그 의미가 확실히 달랐다. 사회생활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 그때 가서 워홀이라는 경험을 떠올리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성격상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눈 뜨고 못보기 때문에 자기계발과 눈앞의 성과에 활활 타오를 게 뻔했다. 현실을 맛본 나는 분명 '워홀'로 생길 여러 리스크들을 감수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추측한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 전에 다녀오려고 한건데. 인턴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 오늘의 선택이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까?


이 길고 긴 고민을 거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워홀의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볼 수 있었고, 더 책임감을 가지고 워홀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말자'는 평소 내 신념에 조금은 더 가까운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워홀에서 돌아오면 나에게도 현실이 닥쳐올 것이다. 내게는 꿈에 그리던 도전이, 대한민국의 기업조직내에서 합당한 휴학의 이유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남들이 스트레이트로 쭉 가는 졸업+취업 대신에 휴학과 워홀을 선택한 이상,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래서 워홀 중간중간에 내가 좋아하는 글도 쓰고, 기획서도 틈틈히 읽고,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제작할 예정이다.


유의미한 결과값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없더라도 추후에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그야말로 살아있는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다.


더 독하게, 더 악착같이 살아남자.

내 워홀에는 내가 포기한 인턴, 자격증, 공모전, 대외활동 같은 수많은 선택들이 얽혀 있다.


후회없이 즐기고, 후회없이 배우자.

D-50 워홀,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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