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기록이란

나의 취향이야기

by 유이나

내 글쓰기의 시작점은 복수심이었다. 어렸을 적 억울하거나, 불가피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을 때면 그 일을 다이어리에 적어놓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 보면 참 유치하고 지독하지만 그땐 그랬다. '당장은 치닫은 감정에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나중에라도 말해야지, 혹은 여기다 적어놓고 안 까먹고 복수할 거야!' 하는 어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적는 습관이 생겼다.


줄곧 안 좋은 일만 기록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기쁜 일이 생겨도 적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무언갈 사주거나, 오빠가 나에게 양보를 해주면 작은 일이라도 모조리 적었다. 나는 왜인지 무언갈 받으면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틈틈이 그 기록을 열어보며 은혜를 갚았다.


먼저 선행을 베풀어준 사람에게 그 선행을 되돌려주는 것은 꽤 뿌듯한 일이었다. 내 작은 배려로 웃는 누군가를 보는 게 좋았고, 그 경험들은 ‘남을 돕는 일’ 자체를 좋아지게 만들었다.


그때 얻은 기록하는 습관은 내가 힘든 순간마다 날 버티도록 도왔다. 평소 일기를 자주 적는 편은 아니었으나 무슨 일이 있거나 우울할 때면 꾸준히 펜을 잡았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는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많이 이용했다. 종이든 전자기기든 수단은 상관없었다. 어려서부터 글로 감정을 토해내던 나에게, 기록은 내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 감정에 대한 원인, 할 수 있는 최선 등등을 두서없이 적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고요해졌다.


나는 글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볼수록 참 신기하다. 아무리 거대한 고민이라도 글로 정리하다 보면 마치 크게 어렵지 않았던 일처럼 느껴진다. 글은 엉켜있는 내 고민들을 하나하나 뜯어내 간단하게 만든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막연했던 목표나 고민을 눈앞에 보이는,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정리해준다. 내가 전진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글을 써온,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글쓰기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바로, 답을 주는 것이다. 가끔 나는 내 감정을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다. 분명 좋은 일인데 왠지 모르게 우울감이 들거나, 별일은 없었지만 유독 신경이 예민한 날. 그때도 글은 항상 정답을 알고 있다. 아마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솔직해지다 보니, 그 글의 요점을 파악하다 보면 진짜 내 본심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지, 무슨 감정들이 섞인 건지 글을 쓰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도 글을 쓴다. 뚜렷한 이유는 모른 채 계속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그 사람에 대한 내 경험, 감정들을 글로 정리한다. 이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다소 피곤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방법이 잘 맞았다. 내가 가장 기피하는 게 있다면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다. 내 감정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섣부른 행동을 하는 건 높은 확률로 후회를 불렀다. 때문에 그 사람을 왜 불편하게 느꼈는지, 어느 부분이 신경 쓰였는지 등등을 파악하고 행동하면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적어도 나 스스로는 그 관계에 후회가 남지 않았다.





문득 예전에 써둔 글을 꺼내볼 때면 느낀다. 그동안의 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무의미한 고민은 없고, 무의미한 경험도 없다. 당시에는 후회도 남고 힘들었더라도 그때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나를 성장시킨다. 이 사실을 스스로 인지할수록 힘든 일을 마주해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커지는 것 같다. 다 지나갈 거고, 다 성장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물론 내가 버텨낼 수 있는 정도의 힘듦이어야 한다.) 지난날의 기록들이 내게 큰 원동력으로 돌아온다.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나는 그런 글이 너무 좋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틈틈이 오래오래 글을 쓰고 싶다.


나에게 기록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번 글을 준비하며 들여다보니, 글은 나라는 사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 책을 많이 읽지 못해서 글과는 거리감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넘쳐나는 아이폰 메모장만 봐도 나는 충분히 글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나에게 기록이란 '영혼의 단짝'이다. 내 모든 속마음, 그동안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아는 둘도 없는 단짝. 만약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걸 해결할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틀림없이 '기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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