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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철 Jul 26. 2023

영문본색 4

미국 정치인들의 재치 

지난 잡문본색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견해를 밝혔는데 이번 영문본색에서는 남녀에 관한 영문들을 살펴보는 걸로 시작해 본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말로 유명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 있다. “Woman has a long hair and short wit. Though women are angels, yet wedlock is the devil.” 이 정도면 단순히 여혐 발언이 아니라 제정신으로 한 소리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훗날 알려지기로는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그의 트라우마가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 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정도 이상으로 괴롭힐 때가 많았고 여기에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까지 불편했던 바이런은 그 콤플렉스까지 더해져 시대상과는 다르게 그의 삶은 전반적으로 낭만적이지 못했다.      


키플링이라는 작가는 <정글북>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유명하지만 영문학사에서는 시인으로서의 명성도 바이런 못지않게 높다. 다만 그와는 다르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Take my word for it. The silliest woman can manage a clever man but it takes a very clever woman to manage a fool.” 일단 여기서 마지막에 fool 다음에는 man이 생략되어 있다. 즉 그냥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남자’인 것. 영어는 같은 단어가 반복이 될 때는 대명사를 쓰거나 과감히 생략도 해버리기 때문에 문맥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가 어렵거나 오역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리듬감이나 강조를 위해 일부러 똑같은 단어나 어구를 반복할 때도 있지만 그런 부분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추후 영문본색이나 번역본색에 다루기로 하고, 결혼에 관한 몽테뉴의 말로 일단 맛보기로 한다. “Marriage is like a cage, one sees the birds outside desperate to get in and those inside equally desperate to get out.” 여기서 those는 birds를 가리키지만 desperate to get은 다음에 in과 out으로 대구를 이루기 위해 그대로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보다 엄밀히 하자면 몽테뉴는 프랑스인이었던 만큼 그가 직접 영문으로 이렇게 썼다기보다 후에 영미권에서 영어스럽게 다듬은 말로 봐야 할 것이다. 여하튼 “결혼은 새장과 같아서 밖에 있는 새는 안으로 들어오려 기를 쓰고 안에 있는 새는 나가려고 기를 쓴다”는 걸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 생활은 누구에게든 녹녹지 않았던 모양. 그리고 키플링이 했던 위의 말에서 take my word for it은 챙겨둘 필요가 있다. trust me와 같은 의미로 보면 되는데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은근히 자주 쓰인다.      


take my word for it과 결이 비슷한 말로 read my lips라는 표현이 있다. ‘진심이니까 내 말 좀 들어봐’라는 의미다.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부시가 써서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는 80년대 후반이었는데 의회를 비롯해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었음에도 그는 “Read my lips, no new taxes!”라는 말로 뜻을 굽히지 않았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미국 경제는 더욱 침체되었고 결국 세금을 대폭 인상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두각을 나타낸 이가 바로 빌 클린턴이었고 그는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로 부시를 공격했다. 지금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번역으로 우리나라 언론에도 종종 언급되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번역본색에도 썼듯 stupid=바보라는 1:1 대응 번역이다. stupid는 물론 그런 의미고 클린턴이 일부러 그렇게 센 단어를 택한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꼭 바보라는 직역보다는 “문제는 경제인데, 참 모르셔!” 정도로만 옮겨도 이 역시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지만 클린턴의 의도와 더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보다 상세한 이야기는 번역본색에서 또 다루기로 하고.


미국 정치인들의 재치를 볼 수 있는 일화들을 마저 언급하며 이번 영문본색은 마치려 한다. 위에서 언급한 조지 부시의 아들도 아버지를 이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맞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분이다. 이렇게 업적을 놓고 보면 후한 평가를 주기는 어려운 그이지만 가끔씩이나마 선보였던 재치 있는 말들은 그의 정적들과 그에게 돌아섰던 국민들마저 잠시나마 웃음 짓게 했었다. 이를테면 그는 행사 때마다 항상 똑같은 턱시도를 입는 걸로 유명했는데 이제 그만 고집부리라는 주변의 권유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Read my lips, no new tuxes!” 한편,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나섰는데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인 그곳에서 부시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원으로 나섰으니 아무리 그가 셀럽이라 한들 선거운동이 녹녹지 않았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는 다니는 곳마다 야유를 받기 일쑤였는데 그럼에도 그는 예정되어 있던 대학 강단 연설을 강행했고 그곳은 CSU Long Beach였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을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터지는 야유와 심지어는 계란을 던지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는 “이왕에 줄 것이면 베이컨도 같이 주라”는 식의 말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한다. 그리고 강단에 올라 그가 처음 한 말은 이랬다. “If you can spell my name, you will get an A!” 그의 이름은 Arnold Schwarzenegger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웃음을 참기 쉽지 않았을 것이며 실제로 그는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래도 공화당원으로서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마저 “나는 민주당원과 결혼도 했고 지금껏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할 일 없다”는 말로 응수했다. 그의 배우자는 실제로 케네디 전 대통령 누이의 딸이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며 케네디 대통령의 어록처럼 유명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그의 노력은 끝내 성공해서 그는 주지사가 되는데 성공, 연임까지 하지만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父子)처럼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글이든 사람이든 ‘본색’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인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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