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우물쭈물'하지 않았던 버나드 쇼 이야기
미국 출국을 앞두고 공항 라운지에 와 있다. 사람들 자체도 많지만 대부분이 국적도 달라 보인다. 그래도 한국어를 제외하면 주로 들리는 언어는 영어와 중국어. 그러다 어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중 들리는 말이 흥미로웠다.
“I don't believe I caught your name.”
아마 서로 여기 라운지에서 만났거나 적어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정도의 말인데 상대방의 답변도 인상적이었다.
“I don’t believe I dropped it.”
영어를 잘하려면 서로 쿵짝이 잘 맞는 단어를 쓰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을 지난 영문본색에서 썼는데 바로 위와 같다. caught라는 단어로 상대방이 쿵 했을 때 dropped라는 답으로 짝을 해주는. 다만 drop이라는 단어는 그 쓰임새가 다양해서 위에서처럼 caught라는 단어를 안 썼더라도 일반적으로 이름을 말하거나 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도 drop을 종종 쓴다. 따라서 유명한 사람들을 자신이 좀 잘 안다는 식으로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name-dropper라고 하기도 한다.
서로 쿵짝이 잘 맞는다는 건 물론 단어뿐이 아니어서 표현이나 어구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조지 버나드 쇼는 본인의 대표작인 <피그말리온>을 무대 공연하는 첫날에 윈스턴 처칠을 초대하며 이런 문구를 보낸다.
“Am reserving two tickets for you for my premiere. Come an bring a friend if you have one.”
겉보기에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초대 문구지만 실은 처칠의 속을 끓게 만드는 일종의 도발성 멘트였다. ‘처칠 당신이 친구가 있을 리 만무하니 어디 있으면 한번 데려와봐라’는 함의가 담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처칠은 어떻게 응수했을까.
“Impossible to be present for the first performance. Will attend the second if there is one.”
처칠다운 응수였다. ‘버나드 쇼 당신의 공연이 두 번이나 할 리 만무하니 두 번째 공연을 한다면 가겠다’는. 이 또한 서로 쿵짝이 맞는 경우라 볼 수 있겠고 개인적으로는 처칠에게 한 표를 더 던져주고 싶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엇갈리는 부분이 많고 그만큼 논란도 있음은 당연 인정하지만 그는 문학적 기질이 상당했던 정치인이었고 따라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특별히 과하다고 보이진 않는다.
허나 버나드 쇼 역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Take care to get what you like, or you will be forced to like what you get.” 그가 남긴 명구인데 영어를 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역시나 지난 영문본색 글들을 통해 많이 강조한 교차대구를 이용한 문장이다. 나에게는 이 말이 흔히 회자되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보다 더 울림이 컸다.
언급한 김에 버나드 쇼의 명구들을 더 보자.
“The upholders of Capitalism are dreamers and visionaries who, instead of doing good with evil intentions, do evil with the best intentions.”
“자본주의의 신봉자는 악의를 가지고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를 가지고 악을 행하는 공상가요, 몽상가다.”는 의미인데 이 말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사회주의자였다. 추후 영문본색에서 관련하여 언급할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으니 우선은 여기서 보류하고.
“All great truths begin as blasphemises.”
(모든 위대한 진리들은 처음에는 모두 신성모독이다)
“The golden rule is that there are no golden rules.”
(황금룰이 없다는 것이 황금룰이다.)
“Martydom is the only way a man can become famous without ability.”
(순교자가 되는 것이 능력 없이 유명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보다시피 멘트들이 상당히 세다. 단지 센 것이 아니라 동의를 하지 못하겠는 분들도 응당 매우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보자.
“I kno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그 유명한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 번역되는 원문이다. 정말 우물쭈물했던 사람이 저런 센 말들을 남겼을까? stay around가 정말 우물쭈물 일까? 노벨 문학상도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했었던 그가? 역시 개인적인 견해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뜻에는 동의하지만, “우물쭈물”이라기보다는 “살 만큼 살다 보면”이라는 의미가 더 어울리다는 생각이다. 보다 상세히는 추후 번역본색에서 다루기로 하고.
아울러 향후 쓸 글들에 대한 자료 수집차 이런저런 글귀들을 보다가 팔만대장경에 이런 글귀가 있음을 알았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겁하지 말며,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오랜만의 미국행이라 괜스레 들떴던 것도 사실인데 이런 명구 다시금 되새기며 마음을 차분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