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관련한 일화와 단상들로 번역의 본색 탐방
번역과 관련한 글을 써야겠다 생각을 한 것은 올해 7월 세상을 떠난 故안정효 선생의 부고 소식을 듣고 서다.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은사처럼 생각하는 분이 곁을 떠났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울 정도였다. 현재 활동하는 전문 번역가들 가운데 중년 이상이라면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번역의 공격과 수비>라는 저서로 선생 스스로 굵직한 그만의 번역론을 집필하기도 했고, 이름난 번역가들의 통찰이 빛나는 번역 관련서들이 이미 많은 지금, 무엇보다 전문 번역가이기는커녕 변변한 번역 하나 정식으로 제대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번역에 대한 글을 쓰냐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번역 자체가 사실 특정한 자격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한만큼, 번역을 좋아하고 관심이 깊은 1인으로서 번역에 대한 그동안의 단상들을 정리해 써볼 생각이다. 그것들이 말 그대로 짧은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도록 깜냥껏 애쓰면서.
다소 무거운 마음과 분위기로 글을 열었는데 한국어 번역의 시작도 밝고 가벼운 모양새는 전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번역’이라기보다는 ‘번안’에 가까웠다. 그나마도 정식 허가받은 작품들도 거의 없었다. 어떤 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데 줄거리만 그대로 살리고 등장인물이나 표현 양식, 배경 등은 마음대로 우리식으로 바꾸어 쓰는 식이었다. ‘제2의 창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난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겠으나 비겁한 변명일 뿐, 노골적이라고까지 볼 수 있을 표절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야 여러 출판사에서 이른바 세계 문학 전집과 같은 책들을 출간하면서 비로소 번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볼 수 있는데, 시작이 좋지를 못했으니 실력 있는 번역가들이 갑자기 등장할 리 만무했고 외국 문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임한 분들도 물론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들도 번역이 주요 업무가 아닌 만큼 조교나 일반 학생들을 시켜 출판만 자신들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횡행했고 따라서 번역의 수준 문제는 이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제대로 보자면 ‘저술’ 못지않게 그 공로를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번역’이 90년대까지도 교수의 업적으로 포함되지 못한 것은 심하게 말하면 자업자득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다이내믹 코리아’가 오랫동안 국가 슬로건이었던 대한민국인 만큼 출판계는 바른 번역보다는 빠른 번역을 선호했고 급기야는 한 작품에 여러 명이 번역을 맡은 일도 벌어졌다. 그들이 합심하여 집단지성을 이루었다면 이상적이었겠지만 현실은 1장에서 베드로가 2장에서 표도르가 되고 3장에 등장한 윌리엄은 4장에서 빌헬름이 되는 식이었다. 숙부였던 사람이 고모부도 되었다가 큰아버지마저 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아사리판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바로 안정효다. 그가 처음 번역을 맡은 작품은 그 유명한 <백 년 동안의 고독>. 지금은 저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스페인어 원서를 바로 직역한 번역본도 있지만, 당시에는 영어 번역본을 중역하는 수밖에 없었고 이를 선생이 맡았는데 한 달 남짓만에 해냈다고 한다. 믿기지 않아 의심하며 읽어본 故이어령 선생은 여러 번을 검토했음에도 특별히 꼬집을 만한 오역이나 어색한 부분이 거의 없어 혀를 내둘렀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후 안정효 선생은 한 달 만에 번역을 완성한다 하여 ‘월간지’라는 별명마저 얻게 된다.
UCC라고 하면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뜻하기도 하지만 세계 저작권 조약을 칭하기도 한다. 원서를 번역하려면 상응하는 액수를 해당 출판사나 업체에 지불하고 번역 출판에 대한 허가 및 독점권을 얻어 번역 출판에 임하는 것이 지금이야 지극히 당연한 절차지만 대한민국은 과거에 제법 오랜 기간을 이걸 무려 ‘외화 낭비’라고 여기며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소위 말하는 ‘해적질’을 공공연히 자행했다. 부끄러운 흑역사지만 사실 그다지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다행히 ‘다이내믹 코리아’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번역 시장에서 점차 진보했고 지금은 한해 출간되는 책들 가운데 번역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치에 달하고 한국 문학 작품이나 다른 장르의 책들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움직임도 상당히 활발하다. 누군가 피땀 흘려 앞서 일구어 놓은 땅에 내가 하는 삽질과 쟁기질은 쉬운 법이다. 내가 그걸 쉽게 잘해서가 아님은 굳이 부연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 누군가 중 한 분이 바로 안정효 선생이었고 그가 얼마나 척박한 땅을 일군 것인지,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등을 향후 번역본색 쪽글들을 통해 써보고자 한다. 그렇다 해서 지금의 번역가들이 삽질과 쟁기질을 별다른 노력 없이 쉽게 한다는 취지가 결코 아니다. 이들 역시 응당 후대를 위해 땅을 일구고 있는 누군가임 또한 부연할 필요 없을 테니.
특별한 부연이 또한 필요치 않을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 번째 산>을 근래에 읽었는데 기본적으로는 고통에 대한 질문을 담은 책으로 이해했다. 살다 보면 내가 수고했거나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거저 주어진 것들도 있듯이, 내 잘못이 아님에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들과 그에 따른 고통에 대한 인상적인 통찰들이 담겨 있다. 코엘료가 포르투갈어로 쓴 원서를 중역 없이 바로 번역한 역자의 가독성 높은 솜씨도 인상적이어서 역자 후기도 보고 싶었는데 책에 담겨 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코엘료 측 에이전시가 허용치 않았다고 한다. 역자 오진영 씨는 그 덕분에 별도로 글을 쓸 필요 없어 좋았다고 그의 페이스북에 밝힌 걸 보았는데 내가 만약 역자였다면 다소나마 서운함을 느꼈을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을 비롯해 번역과 관련한 무엇이든 앞으로의 번역본색을 통해 영문본색과 함께 그 본색 탐방에 나서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