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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철 Jul 20. 2023

잡문본색 2

점차 드러나는 나와 글의 본색 

브런치 작가 신청 승인 알림은 어제 김규항 선생과 김겨울 작가의 <자본주의 세미나> 북토크 참석차 상경했던 합정역 부근 카페에서 봤다. 기뻤던 마음보다 떨어졌대도 마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척, 오랜 세월 습관처럼 행해왔던 쿨한 척을 이번에도 또 했을 내 징그러운 모습에 진저리를 먼저 쳤다. 그래도 기대감이 낮았던 건 사실이긴 했다. 작가 신청을 하려면 세 편의 글이 필요해서 평소 생각해 두었던 영어학습과 번역 그 밖의 잡문 딱 세 편을 올렸는데 딱 하루 만에 승인이 날 줄이야. 오래전에 사법고시를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친구가 결국 사시를 포기하고 곧바로 취직 준비를 했는데 딱 한 번에 이름난 공기업에 입사한 뒤, ‘죽을힘을 다해 열려고 했던 문은 꿈쩍도 않더니 슬쩍 밀어본 다른 문은 쉽게 열려 당황스러웠다’고 소회를 밝히길래 어쩜 세상 재수 없는 지자랑을 저리도 산뜻하게 할까 싶었는데 이제 내가 그러고 앉아있는 기분이다.     

역시 오래전이지만 KBS <인간극장> 프로그램에서 “돌아온 흑기사”라는 제목으로 연탄 배달일을 하는 아버지를 돕는 두 아들에 대해 다룬 적 있었다. 큰아들은 펑범한 회사원이었다가 일을 접고 연탄을 잡았고, 둘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가 학업을 접고 역시 연탄을 잡았다. 사연인즉슨 아버지가 수십 년 그 힘든 연탄 배달 일을 하며 어렵사리 모은 돈을 보증 한 번 잘못 선 바람에 날려버리고 집마저 잃게 되자 아들들이 기꺼이 ‘흑기사’를 자청한 것.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 다음날 아침 8시가 되어야 끝나는 아주 고된 노동이지만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의 일당을 챙길 수 있었고 당장에 돈이 시급했던 그들에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이고 남들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아버지가 하는 일 옆에서 보며 배우면 되니까 숙달하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큰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을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한 번쯤은 깊이 있게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대학 4년 동안 들어갈 돈이면 꼭 사업이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일을 할 밑천은 될 텐데 그럼에도 꼭 대학에 가아먄 하는 건지를요” 둘째 아들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들의 말이 정답은 물론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어쩌면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충분한 해답은 될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담임 선생님은 당시 문단에서도 이름난 소설가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위 ‘참 교육’이라는 것을 그분은 그런 용어나 타이틀을 내걸지 않고서도 몸소 보여주었었다. 가정 통신문에 당시 으레 들어 있던 ‘장래희망란’을 아예 없앴던 것은 수많았던 그런 실천 중 하나였다. 부모님이 희망하는 장래희망이 따로 있었고 그 밑에 본인이 원하는 장래희망이 있었는데 이게 장차 가정불화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무엇보다 꿈이 아무리 크다 한들 그것을 적는다는 건, 좋게 보면 목표로 삼는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한계를 짓는 일이라는 이유에서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분야에서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저희 부모님은 사실 제가 oo가 되길 바랐어요" 하는 식의 말을 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다. 일종의 죄책감마저 묻어나는 얼굴을 하고서. 어쩌면 이게 다 실제로 그놈의 어린 시절 장래희망 때문일 수 있다.      


“승철이는 먼 산을 자주 보는구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걸 기록으로 쓰는 습관을 들여보렴. 그 ‘쓰임’이 당장에는 아니더라도 나중에라도 적어도 한 번쯤은 꼭 긴요하게 ‘쓰일 때’가 있을 거야.” 


툭하면 창 밖을 그냥 자주 내다보곤 했던 내게 어느 날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었다. 솔직히는 공부하기 싫었거나 수업이 따분해서 그렇게 멍 때렸던 건데 한 구탱이 멍들게 때릴 수도 있었을 선생님은 먼 산 본다는, 당시에 다른 어른들도 종종 썼던 표현으로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지적을 해주셨던 셈이다. 살아계셨다면 20년이 지나서야 선생님 말씀대로 이렇게 쓰입니다 하고 보여드릴 텐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풀 때는 둘 다 웃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베풀 때가 되면 둘 다 운다”라고 셰익스피어는 말했었는데 부자간의 관계에만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여했던 세미나에서 김규항 선생은 “이 미쳐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성찰과 사유가 어쩌면 유일한 대안”일 것이라고 했다. 그런 성찰과 사유의 실천으로 의미 있는 독서를 선생은 어제 언급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먼 산 보는’ 일도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재수 없는 지자랑을 산뜻하게 했다고 친구를 씹어놓고 이러느냐 싶을 수 있지만, <B급 좌파> 어디에선가 선생도 거의 같은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현실은 먼 산 보거나 딴짓하는 아이를 꾸지람했던 예전이 차라리 그리운 오늘이다. ‘오래된 미래’가 돼버린 그때는 그래도 그런 아이들이 분명 적잖이 있었으니까. 작금은 아이들 스스로가 그걸 용납을 못한다.     


또 오늘 같은 이런 날씨에 학교에서 벌어진 그런 뉴스들에 저런 정치인들이라니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 시인의 말이 새삼 생각나는 저녁이다. 나 자신부터 ‘무증상 환자’이겠지만, 진짜 중증 환자는 단연 자본주의일 것이다. 김규항 선생은 “태어난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고 자본주의도 예외는 아닌데 08년 공황에 가까웠던 경제 위기로 어쩌면 이미 죽어버렸던 자본주의가 제대로 죽지를 못하고 좀비처럼 지금까지 남아 있어 더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라 일갈했지만, 그 말에 고개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던 어제 참석자들조차 단언컨대 다수는 ‘그래도 현실이...’ 하며 세미나 끝나고 나선 그 모습처럼 돌아섰을 것이다. 나는 아닌 척, 또 그렇게 쿨한 척 앞으로도 두고두고 진저리를 치기 위해 여기 이렇게라도 잡문으로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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