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본색, 이거 하나만큼은 기억하자
“Tell me more about it, blow by blow.”
미국 유학 시절 기숙사에 같은 방을 배정받은 친구랑 한동안은 같이 부대껴야 할 사이기에 서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 남자들은 군복무가 의무인데 나는 허리가 좋지 못해 공익근무 판정을 받아서 초등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을 돕는 일로 대신했다는 말을 했더니 이 친구가 관심을 보이면서 한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 blow by blow라는 말뜻을 이해를 못 해 되물었고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다’는 의미임을 알았다. 문법적인 부분을 짚자면 이 친구는 저 말을 부사로 썼고, 보통은 형용사로 쓴다. 예를 들면 “Give me a blow-by-blow description of your experience.”와 같이 쓰면 이 친구의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권투 시합에서 선수들이 펀치를 날릴 때마다 그 펀치에 대해 상세하게 중계를 했던 라디오 방송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하는데 요즘의 젊은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저 말을 쓰는 걸 보면 알아둘 필요가 있는 어구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유학을 했거나 아니면 어학연수 경험이 있거나 그런 해외 체류 경험이 없더라도 영어를 학습하다 보면 단어나 어구, 표현 자체는 특별히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의미인지 얼른 와닿지 않는 것들을 접하게 된다. 그나마 blow by blow처럼 간단한 어휘면 그래도 괜찮은데 구문으로 접하게 되면 난감해진다.
There is no art which one government sooner learns of another than that of draining money from the pockets of people.
역시 개인적인 고백으로 밝히는 blow by blow 다음으로 그즈음에 내가 맞닥뜨렸던 난감했던 문장이다. 이 정도도 모르고 미국 유학은 어떻게 했대?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당시 나는 그 정도였다. 이 땅의 대다수 영어 학습자들처럼 느낌으로 때려 맞히는 해석은 내게도 습관처럼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미국까지 와서도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이 징그러울 정도로 싫었다. 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부터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고 그동안 대충이라도 의미를 알았으면 넘어갔던 문장들부터 다시 집어 들고 그게 왜 그런 의미가 되는지를 고민하며 부대꼈고 지금 와서 보면 내 생애 몇 안 되는 잘한 일 중 하나라 여긴다. 뭔가를 배우고 익히면서 느끼게 되는 찜찜함은 그게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찜찜함을 어떻게 넘기느냐인 듯하다. 찜 요리처럼 그대로 묵혀 두고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찜 쪄먹겠다는 각오로 덤벼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유형이 정답이라고 감히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물론 없는 일이겠지만, 기본 단계에 있어서는 그래도 후자 쪽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 낫다고 본다. 기본 = 쉬운 것이라는 등식이 심각한 착각임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본다. 이 기본 단계를 철저하게 다지면 어떤 걸 찜 요리로 둘지, 찜 쪄먹게 달려들지 분간하기도 그만큼 수월해진다.
영문본색이 잡문본색처럼 변색되는 듯한데 일단 위에 언급한 저 문장의 의미는 “사람들 주머니를 터는 기술을 빼면 정부가 아는 다른 기술은 없다”는 뜻이다. 문법을 위한 문법적 예문을 좀 억지로 드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 혹 있다면 저 문장은 분명 이름 한 번쯤은 들었을 유명 인사의 유명 작품에서 발췌했음을 밝혀둔다. 바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저 문장이 어떻게 그런 뜻이 되는지를 전혀 모르겠는 사람과, 뜻을 알려주고 나니까 아 맞다, 그렇겠네 하는 사람의 차이는 의외로 크지 않다. 알려줘야 안다는 건 알려주기 전까지는 몰랐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몰랐던 사람과 사실상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어 독해를 하면서 문장들 해석은 되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건 전혀 해석이 안 된다는 의미다. ‘어떤 내용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판단 가능한 일’이 해석의 사전적 정의인데 해석은 되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신앙은 있는데 믿음은 없다는 말과 같은 결이지 않을까.
“Design or resign!”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마가렛 대처의 어록이다. 1979년, 실업과 침체에 빠진 영국에 진취적 기상을 불어넣기 위해 그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결의 문장으로 “Publish or perish!”가 있다. 미국 대학교수들이 숙명처럼 여기며 연구와 논문 발표에 몰두하는 동기로 삼는다. 유학했던 미국 대학에서 만나 알게 된 교수들 절대다수가 실제로 그랬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언제 잘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해하는 회사원들과 같은 인상이었다. 비즈니스에서, 특히 주식 시장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Bullish or bearish!”가 있다. bull과 bear는 각각 강세와 약세를 뜻하는데 뉴욕의 월스트리트는 원래 전통적으로 유명한 소 시장이었고 그중 가장 뛰어난 품종으로 뽑힌 소에게 파란색 천을 둘러주었는데 여기서 blue chip이라는 말도 생겼다고 한다.
두서없는 구성으로 이뤄진 이번 영문본색이라 찜찜한 기분이지만 그만큼 기본이 아직도 부족함이라 여기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변명을 대자면 “Different strokes for different folks”라는 말로 대신한다. 이건 또 뭔 소리래 하면 “사람마다 손놀림이 같을 수는 없다”는 말로 “사는 법은 제각각이기 마련”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면 “Nothing succeeds like success”라는 말이 있다. “성공처럼 잇따라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뜻에서 “하나가 잘 되면 만사형통”이라는 의미가 된다. 두서없는 구성이었지만 이번에 소개한 문장들을 가만히 보면 영어의 색깔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 영문본색에서도 언급했듯 영어는 같은 의미라면 이왕이면 ‘운(rhyme)’을 맞추거나 ‘두운(alliteration)’을 쓰거나 ‘교차되는 대구’의 어휘나 표현으로 쓰고자 한다. 이 점만 숙지하고 있어도 분명 한 번쯤은 요긴하게 써먹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