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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철 Jul 24. 2023

영문본색 3

교차 대구어법이 궁금하다면 

지난 영문본색에서 영어다운 영어를 쓰려면 ‘운(rhyme)’과 ‘두운(alliteration)’ 그리고 ‘대조나 대구를 이루는 표현’을 써주면 효과적이라고 했는데 운과 두운은 그렇게 영어로 표기를 해놓고 대조나 대구를 이루는 표현은 그렇지 않아서 이번 영문본색에서는 그런 표현 중 ‘교차 대구법’이라는 걸 우선 영어로는 chiasmus라고 하며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chiasmus는 영어로 풀어쓰면 to mark with a chi라는 뜻이고 여기서 chi는 그리스어 알파벳 22번째 글자인 ‘X’를 가리키는데 ‘엑스’가 아니라 ‘카이’라고 발음한다. 크리스마스를 X-mas라고 종종 표기하는데 여기서 X가 바로 이 카이며 cross를 뜻한다.      


‘교차대구법’은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에서도 자주 쓰인다. 얼른 생각나는 표현으로는 故정주영 회장의 저서 제목이기도 했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이 있다. 또한 전형적인 교차대구법에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故김수환 추기경은 87년 6월 항쟁 당시 경찰들이 명동성당에까지 투입할 것이라는 통보를 듣자 “경찰들이 들어온다면 제일 먼저 나를 쓰러뜨려야 할 것이고, 나를 쓰러뜨리면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쓰러뜨려야 할 것이며, 이들마저 쓰러뜨려야 학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는 말로 그들을 물러서게 한 바 있다. 이런 말씀 한 마디가 실은 어지간한 전도보다 훨씬 큰 힘을 지니며 무늬만 종교인인 내게도 보다 큰 울림의 믿음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종교적인 이야기는 추후 잡문본색에 쓰는 것으로 하고 이어서 교차대구법의 본색이 드러나는 영어 문장들을 살펴본다.     


가장 기본적인 문장으로는 “Like father, like son”이 있다. “Like master, like man”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건 의미가 얼른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표현인데 요즘처럼 이른바 문해력 저하가 화두인 때엔 이 말 자체가 어쩌면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원래는 교차 대구를 더 이루는 표현으로서 “용장 밑에 약졸 없고, 약장 밑에 용졸 없다”는 말로 쓰인다. 용감한 장수 밑에 약해 빠진 병사들 없고, 약한 장수 밑에 용감무쌍한 병사들 없다는 말인데 후자의 경우엔 역사적으로만 보더라도 반례가 충분히 존재하는 만큼 설득력은 전자가 더 효과적인 듯하다.      


한편 교차 대구법은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쓰던 어법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장은 미국 28대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의 “I’d rather lose in a cause that will one day win than win in a cause that will someday lose.”다. “언젠가는 질 명분에서 지금 이기느니 언젠가는 이길 명분에서 지금 지겠다”는 말인데 그가 이런 말을 한 배경과 그 밖에 관련된 이야기는 추후 영문본색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고, 교차 대구법 명문으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미국 대통령은 35대 대통령, 존 케네디다. 일단 그 유명한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가 있는데 이 또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배경에 있는 고로 역시 다음 영문본색으로 넘기고, 케네디 대통령의 그런 어법은 아마도 그의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When the going gets tough, the tough get going.”과 같은 말을 그의 아버지는 남겼는데 “상황이 힘들어질 때 강인한 사람들은 도약한다”는 말을 저렇게 멋들어진 대구 어법으로 남긴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Don’t get mad, get even!”이라는 말로 뭇사람들을 크게 자극시켰으니 “빡치지 말고, 보복하라!” 쉽게 말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의 본격적인 시초로 봐도 과히 틀리진 않을 듯하다.      


명확한 출처는 불분명 하지만 속담처럼 쓰이는 대구 어법 문장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애정하는 표현은 “Don’t sweat the small, pet the sweaty!”라는 말이 있다. “사소한 일에 땀 흘리지 말고, 땀 흘리는 일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운(rhyme)으로서 발음상의 대구를 이루면서 두운(alliteration)을 강조하기 위해 small 대신에 petty를 쓰기도 한다. 못지않게 애정하는 표현은 “Winners never quit and quitters never win”이 있다. 이미 유명한 말이기도 하듯이 이 말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식축구 감독이라 평가받는 빈스 롬바디의 말로 알려졌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인들이 가장 환장하는 스포츠인 미식축구, super bowl의 우승팀에게 수여하는 트로피를 ‘롬바디 트로피’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그의 입지가 얼마큼인지를 알 수 있다.      


한편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추앙받는 시인들의 어록으로 이번 영문본색은 마치려 한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로 유명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Half the world is composed of people who have something to say and can’t, and the other half consists of people who have nothing to say and keep on saying it.” 어렵지 않은 말이지만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전하는 의미가 크게 느껴지는 건 나만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분명할 말이 있음에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람들과 결코 할 말이 없을 텐데도 계속 지껄이는 인간들’ 떠난 자는 말이 없는데 남은 자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저리들 떠들어대는지. 이렇게 말하면 물론 내 발밑부터 두렵지만 이 이상의 말들은 위에 언급한 종교적인 부분들과 함께 잡문본색에서 떠들기로 하는 걸로.     


끝으로 영국에서 추앙받는 시인인 존 밀턴은 그의 대표작, <실낙원(Paradise Lost)>은 모르더라도 그가 남긴 다음의 말은 기억을 했으면 좋겠다. “Childhood shows the man, as morning shows the day.” 어린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다 알 수 있는 법이다. 작금의 뉴스와 이슈만 보더라도 이미 충분히 암울하니 더 부연하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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