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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LAN Sep 27. 2021

 힐링의 시간

초보플로리스트가 안드는 감성 꽃말

오후 세시.


  오랜 직장생활에서 오후 세시는 이른 출근시간의 업무 시작으로 하루 업무량의 3분의 2쯤을 끝내고 넓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녹차 한잔 때로는 시원한 물 한잔 마시며 잠시 쉬어가는 타임이었다.


  퇴직 2년 차인 지금의 오후 세시는 남서향의 구조 덕에 뒤늦게 거실 창 너머 쏟아지는  따스한 볕을 반가워하며 달달 디저트에 아메 한잔 먹으며 오늘의 꽃이나 초록이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시간이다.


    며칠 전 오후 세시에 피는 꽃을 알게 되었다.


나의 힐링의 시간, 오후 세시.

그 시간에 꽃이 핀다니.


   초여름 어느 날.

 베란다 창문 가까이에 놓고 키우던 애니시다 화분 한쪽에 못 보던 새싹이 보인다. 뽑아버릴까 하다 옆에서 키우던 연보랏빛 이쁜 꽃 플럼바고 싹일지도 모른다는 야무진 생각에 한참을 두고 본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애니시다가 훅 가버린 후 커다란 토분  한쪽에 초록잎 불리며 열심히 크고 있는 초록이를 제 집을 만들어 주고 물 주고 창틀에도 놓아주고.


  굵은 줄기 만들며 짧은 시간에 따글따글 잎은 달았는데 꽃이 필 기미도 없고 플럼바고로 검색을 해 보면 사진과 다르기도 하고.

풀떼기 열심히 키우고 있었나 보다 하는데 지난주 꽃대가 세개 올라오더니 하루하루 쑥쑥 자라 가느다란 꽃대에 아주 작은 몽글몽글한 것들이 보인다. 식물 이름 검색 웹을 통해 알게 된 이름.


'세시화'

세시에 꽃이 펴서 세시화라니!


아침에 피는 꽃도 있고

저녁에 피는 꽃도 있고

밤에 피는 꽃도 있는데

세시에 피는 꽃도 있다니.


오랜 시간 많은 화초들과 꽃을 상대했지만 특정 시간에 피는 꽃이며, 꽃시장에서는 잎안개로 불리는 꽃 수업 인기 소재였다는 것은 꽃순이에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다음날 외출에서 돌아온 시간, 오후 4시.

2시경 나가기 전에 피어 있지 않던 꽃이 앙증맞게 피어있다.


다섯 장의 핑크 꽃잎에 노란 수술까지.

너무 작아 사진으로 제대로 찍기도 힘들지만 화형과 색감이 또렷한 꽃이 너무 이뻐 수십 장을 찍는다.


노란 수술 담은 핑크빛 꽃은 꽃대로

몽글몽글 빨강 열매는 열매대로

두어 달 사이에 사방으로 뻗어 나온 찐 초록 잎은 잎대로

참 매력적이다.


다음날.

달달 믹스커피 한 잔 준비해놓고 정말  세시에 피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앞에 두고 오후 세시를 기다리지만 꽃 소식은 없다.


다섯 시 반.

어제와 다른 일곱 송이 미니미니 꽃들이 짠하고 피어 있다.

신기함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고 어제는 네시에 오늘은 다섯 시 반에 피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지지만 준비가 된 순간에 활짝 피어나는 것일 거라며 깔끔하게 정리한다.



네시에 피든 다섯 시에 피든

꽃 이름은 세시화여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던 하루의 고개를 넘어 낮시간을 정리하며 휴식의 시간을 향해가는 그 소중한 시간에 꽃이 핀다는 것은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며



세시화라는 이름에는

네시화, 다섯시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을 툭툭 건드리는 달달함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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