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기술_보라데이
나에겐 아주 멋진 경찰 동생이 있었다.
사회에서 만났지만 거의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늘 농담처럼 말했다.
“경찰이 뭐 이렇게 잘생겼어?”
“여자친구 생기면 꼭 누나한테 먼저 보여줘야 돼.”
어느 날 나는 전화를 했다.
“누나가 지금 힘들어서 술 한잔하고 있는데… 올 수 있어?”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네. 30분 안에 갈게요.”
그 한 문장이 그 아이의 전부였다.
위로보다 사람이 먼저 오는 사람.
그런데 그 멋진 동생은
친구와 동업한 사업이 잘못돼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통화했을 때
목소리가 유난히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어디 아프냐고만 물었다.
그 목소리의 무게를
나는 읽지 못했다.
조금만 더 물어볼걸.
괜찮냐고 한 번만 더 물어볼걸.
그 후로 나는
사람의 목소리를 그냥 넘기지 못한다.
얼마 전,
시에 기부를 하겠다며 찾아왔던 한 부동산 대표가 있었다.
처음엔 나 같은 소시민은 만나주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작은 민원 하나를 처리해 주며
우연히 가까워졌다.
어느새 나는 그를 동생이라 불렀다.
그가 최근 부동산 정책과 높아진 금융비용 부담으로
부도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경찰 동생의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얘까지 잘못되면
나는 또 그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야 하나.
하지만 나는 그가 어느 정도로 힘든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섣불리 위로하는 건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마침 우리 팀에서 보라데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Look 보라.’
주변을 둘러보라는 의미였다.
멍도 보라색이다.
상처는 겉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점심 먹자.”
만나서 한참을 돌려 말하다가
결국 어렵게 꺼냈다.
“누나 상처 주지 마.”
“경찰 동생 같은 일 또 겪으면
나도 스스로 회복 못할 만큼 큰 상처가 될 수 있어.”
나는 내 이야기도 했다.
어릴 적 겪었던 어려움들.
넘어졌던 시간들.
그래도 지금은 누구 못지않게 잘 살고 있다고.
완벽한 해결책은 주지 못했다.
대신 자주 연락했다.
“밥은 먹었어?”
“힘들면 전화해.”
“언제든지, 누나가 밥 사줄게.”
과하지 않게,
그러나 끊기지 않게.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먼저 전화를 했다.
“누나, 저 며칠부터 며칠까지 베트남 출장 가요.
전화 안 받으면 걱정할까 봐 미리 말해요.”
그 말이 참 고마웠다.
“내가 다시 재기하면 누나 한우 매주 사줄게.”
“어려운 일 겪어보니까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내 사람인지 알겠어.”
골프 치자고 하면
조금만 기다리란다.
“동생 믿고 기다려.” 믿음직스럽다.
나는 안다.
버틴다는 건
혼자 견디는 게 아니다.
한 번 놓친 신호를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이다.
말없이 무너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일이다.
나는 그때
행정이 아니라 사람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주변을 본다.
혹시
말없이 버티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그게
내가 배운 또 하나의
버티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