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실명

4화 꿈

by home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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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그는 움직일 수 없었고 다만 멀리서 어떤 길쭉하고 기분 나쁜

여자가 마치 무당벌레 같이 빨간 바탕에 검은 점이 찍힌 옷을 입고는

자신의 오른쪽 눈을 가리키며 한 발짝씩 걸어오는 꿈이었다.

여자는 삐쩍 마른 몸에 배만 불룩 튀어나고 얼굴은 창백했는데

손가락은 이상하리만치 길었고 마디가 볼록해 마른 나뭇가지와 같이 보였다.

창백한 나뭇가지와 같은 손가락 끝에는 톱니처럼 갈라진

길쭉한 손톱이 지저분하게 붙어있었다.

눈은 푹 꺼져 마치 눈동자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 자가 조그맣게 보이는 사백안이었다. 갸름한 미인형의 얼굴이지만

어쩐지 몸서리가 쳐지는 기이한 얼굴을 하고는 입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여자가 한 발자국씩 가까워질 때마다 오른쪽 눈꺼풀이 부르르 하고 떨렸다.


겨우 잠에서 깨어보니 온통 땀 투성이었다고 한다.

그는 일어나 물을 한잔 마시고는 오른쪽 눈에 손을 대어 보았다.

약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조금은 편안했다.


이틀 동안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

약을 잘 먹어서 인지 떨림도 없었고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삼일째 되는 날 약을 모두 먹고는 병원에 다시 내원을 할지 고민이 되었다.

눈의 떨림도 멈췄고 나름 푹 쉬어서 이제는 괜찮을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했다.

오늘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회의가 있는 날이어서

10시 즈음 회의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는 순간

옆에 앉은 상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재수 없는 새끼는 왜 여기 앉는 거야? 으휴"


또다시 떨리 눈꺼풀과 함께 또다시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고

상사는 말없이 회의 자료만을 훑어볼 뿐이었다.

회의가 시작되어도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눈꺼풀은 계속해서 떨려왔고 수많은 소리들이

소용돌이치듯 머릿속을 헤집었다.


"회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긴 거야?"

"오늘 점심은 뭐 먹지?"

"퇴근하고 김대리한테 술 한잔 하자고 하면서 꼬셔볼까?"


회의가 끝나자마자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뛰쳐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특별한 치료 가벼운 찜질과 약을 처방받아 약국에서 약을 받은 후

단숨에 털어 넣었다.

눈꺼풀에 떨림은 잦아들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과 라도 가봐야 하는 건가?"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난 후 아까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는 조금 심각해졌다.

그리고 동료들이 자신을 가식적으로 대할뿐더러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닌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것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다행히 약을 먹는 동안은 눈에 떨림도 이상한 목소리들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약을 먹는 동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눈꺼풀에 떨림도 없었고

나를 보며 가식적인 연기를 하는 동료들도

그대로였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동료들이 마음속으로

뭐라고 욕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니

가증스럽고 또 역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니 사람들에 속마음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뒤에서 놀다가 실적만 부풀려서 내가 한 것처럼 보이게 해야겠다"


"오늘 끝나고 신대리 만나기로 했는데 마누라가 눈치챈 건 아니겠지?"


"박 부장 새끼 내가 사람 써서 죽여 버린다. 언젠간 진짜 죽인다."


사람들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들으며

남자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부러진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이후에는 어쩐지 재미있게 느껴졌다.


남자는 더욱 자주 아니 거의 계속

눈꺼풀이 떨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것보다 사람들의 날것 그대로의

속마음을 듣는 것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았고

그날 밤부터 매일 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그 꿈은 언제나 똑같았다.


기분 나쁜 그 여자가 떨리는 눈을 가리키며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는 꿈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자가

날로 날로 가까워 온다는 점뿐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쾌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남자는 점점 예민하고 괴팍하게만 변해갔다.


"그때 병원을 계속 갔더라면 이지경이 되지 않았겠죠."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하얀 플라스틱 안대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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