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실명

5화 실명

by home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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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병원을 아예 찾아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광적으로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보는 것에

집착했다가도 눈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자신이 무서워

병원을 다시 찾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만 했고

약을 먹으면 증상은 사라지고 악몽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사람들이 속으로 자신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약을 먹지 않고 병원을 가지 않으면

금세 다시 눈꺼풀이 떨리고 목소리가 보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악몽을 꾸었다.


"남의 마음을 엿보는 것은 심연을 엿보는 것과 다름없더군요"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심연을 들여다보다 심연에 먹혀 버린 것같이

남은 한쪽 눈에 허망한 빛을 보이며 말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그것이 눈앞에 와있었습니다."


그는 그날이 생각나는 것처럼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꿈속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듯

그저 두려움이라는 감정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가까이서 보니 그것은 더욱 기괴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두 눈이 있던 자리에는

구멍이 뚫려 있더군요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검은 구멍 말입니다."


그는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황량한 눈동자를 한채

어깨를 감싸 쥐고는 더욱더 세차게 떨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다음날 병원을 가려고 했는데...."


그는 말을 잊지 못한 채 한참을 있었다.

진정이 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잠시 한숨을 몰아쉬고는 이제는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만 하고 바로 병원으로

바로 가려고 했습니다. 어쨌든 치료를 받으면

꿈속에서 그것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모두 나에 대한

그 소리들 말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 새끼 요즘 좀 위험한 것 같은데 눈빛 좀 봐"


"재수 없는 새끼 꼬락서니가 왜 저러지?"


"어우 냄새나는 것 같아 제발 가까이 오지 말아라."


수많은 소리들이 웅웅 거리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고 오른쪽 눈꺼풀은 떨리다 못해

욱신거렸다.


그는 오른쪽 눈을 감싸 쥔 채로

비명을 지르며 마구 난동을 부렸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의식을 잃었을 때 그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눈동자 바로 앞에는 톱니처럼 갈라진

길고 지저분한 손톱 하나가 보였다.


"그것이...."


그는 안대로 가려진 눈을 감싸 쥐고는

격렬하게 떨었다.


"손가락은 아주 천천히 눈동자를 파고

들어왔습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한 고통에 나는 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어요...

거기가 바로 꿈속이었으니까요.."


그는 마치 어제 겪었던 일인 듯

창백해져 다른 사람의 얼굴 같이

변하여 말을 이었다.


"눈을 감을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즐기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밀어 넣었습니다."


그가 극한의 고통에 끝에 다다를때즘

가까스로 꿈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그때부터 오른쪽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떨림도 멈췄고요

병원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신경이 모두

죽어버렸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을 마치고 빈커피잔을 만지작 거릴 때

나는 도무지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커피를 얻어먹기 위해 삼류 공포 소설을

차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역시 당신도 믿지 않으시는군요..."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봤을 때

그의 왼쪽 눈이 격렬히 부르르 떨렸고

나는 그의 굳은 표정과 격렬히 떨리는

눈꺼풀이 무서워져 아무 말 없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이후로 한동안 그를 마주칠까 봐

커피숍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3개월쯤 뒤 퇴근길에 우연히

커피숍을 지나게 되었고

나는 그때 멀찍이서 그 남자를

다시 보았다.


행색이나 차림은 변함없었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이제는 안대가

아닌 양쪽 눈 모두를 천으로 두른 채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손에 든 채로

앉아있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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