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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치남 Jun 21. 2024

대한민국에 이런 의사도 있었다.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참조 

안녕하세요. 책으로 치유하는 책치남입니다. 


  요즘 환자들과 가족들의 힘든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서 많이 봅니다. 그분들 생각을 하다가 이태석 신부님이 갑자기 떠올라서 도서관에서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라는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추적 60분으로 잘 알려진 구수환 PD님이 이태석 신부님의 삶에 감동이 되어서 쓰신 책인데 이분이 불교 신자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왜 불교 신자인 구 PD 님은 평생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사비까지 털어서 이태석 신부의 삶을 기리는 [울지 마 톤즈], [부활]이란 영화까지 제작을 한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그를 붙잡아 이태석 재단에 제2대 이사장을 맡게 했을까요? 읽는 내내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헌신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모릅니다. 영향력이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음악으로 희망을 선물하다. 


  이태석 신부가 유명해진 것은 톤즈에 브라스 밴드를 만든 이후부터입니다. 전쟁의 아픔으로 삶의 소망이 없던 아이들이 음악으로 다시 꿈과 소망을 찾게 된 것으로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이 브라스 밴드를 만든 이유를 이태석 신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그곳에 가서 아이들을 보니까 전쟁 중이어서 보통 심성이 정상적인 아이들이 아니에요. 자기 눈앞에서 가족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고 폭탄 맞아 돌아가시고 이런 걸 본 아이들이라서 정상적인 아이들이 아닌 거예요. 음악으로 어떻게 해봐야 할 것 같아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이태석 신부)

 

  그 지역의 단 한 명의 의사로서 몰려드는 환자들을 돌보기도 바빴을 텐데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이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겠다며 영혼의 치유자로 나서기까지 하다니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톤즈와의 인연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한센인을 처음 만난 것은 신학생 때다.로 마에서 공부하던 이신부는 대학 4학년 때, 현장답사 겸 선교지역을 알아보기 위해 케나 나이로비에 머물렀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제임스 신부가 의사 출신 신학생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태석 신학생을 찾아와 한센병 환자를 도와달리며 톤즈로 데려온다. 신학생 이태석은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한센인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신부가 한센인에게 특별하게 애정을 쏟은 이유가 있다.

-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중 - 


  일반 환자도 돈이 되지 않거나 내 명예에 누가 되면 치유를 거부하는 의사들로 넘치는 대한민국에 경종을 우리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천주교 사제라면 이제 의사도 아니고 굳이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러 달려갈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이태석 신부님은 꼭 다시 톤즈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로마로 떠납니다. 사실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학생 이태석은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학업을 위해 로마로 갔다. 주민들은 그 약속을 믿지 않았다. 전쟁이 계속되는 참혹한 현장을 다시 찾을 거라고 믿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신부는 사제서품을 받고 톤즈로 돌아왔다. 주민들은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고마움과 반가움에 기뻐했다. 이신부는 병원을 지어 부상당한 사람을 치료하고 마을을 찾아다니며 두려움과 답답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를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종교는 고통받는 사람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다.

-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중 - 


  의사로서의 서약과 환자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요즘, 이태석 신부님 같이 의사로서의 진정한 명예가 무엇인지 아는 의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든지 편안한 곳으로 갈 수 있는 사제가 굳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에, 그것도 가족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한센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평생을 바친다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신부는 톤즈에 돌아온 후 한센병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치료해 주었다. 그런데 톤즈에만 있는 출 알았던 환자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멀리는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도 있었다. 이신부는 한센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해 40여 개가 님은 한센인 기주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실태를 조사했다. 그리고 526명을 한 곳으로 이주시켰다. 그곳이 지금의 라이촉 마을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치료에 필요한 시설과 약이 필요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서 독일 구호단체와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절박함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한센인을 살리기 위한 전쟁이다.

-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중 - 


  이태석 신부님이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이 한센병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526명을 한 곳에 모은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일반인도 아니고 한센병자들을 한 곳에 모아 촌을 이룬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분이 이렇게 사람들을 모은 것은 의사가 본인 혼자였기에 더 많은 한센병 환자들을 치유하려는 거룩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병원 건립을 위해서 동분서주합니다. 


  "앞으로 환자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했고 서럽기도 했다. 그렇게 허탈하게 서 있기도 잠시, 포도당을 주사하기 위해 진혈대(토니제: 혈관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노란색 고무줄)를 부탁하니 그것마저 없더구나. 하는 수없이 다른 사람에게 환자의 팔을 누르게 하고 혈관을 겨우겨우 찾아 주삿바늘에 연결했지. 정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눈물이 날지경이다." (이태석 신부가 조카에게 쓴 편지)


  지혈대 하나 제대로 없는 곳에서 526명의 한센병 환자를 혼자 돌봐야 했던 현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눈물을 흘렸을까요? 에어컨 빵빵 나오는데서 온갖 대접을 받고 최상위 클래스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의사들이 넘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고귀한 삶이 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서너 명의 남자들이 담요에 싼 환자를 진료소 앞에 내려놓고, 사람 죽어간다고 도와달라며 난리를 치고 있다. 임신 5개월에 자연유산으로 죽은 태아를 분만하고 하혈이 멈추지 않아서 급하게 실려온 환자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거의 백인의 얼굴 같더구나. 혈압계를 부탁하니, 10분이 지나시야 면지가 가득한 구식 혈압계를 보조 간호사라고 하는 직원이 맨손으로 먼지를 쏙 홈치며 건네주었다. 혈압을 측정하라고 부탁하고 맥을 짚어보니 아득히 먼 약한 맥이었다(조카에게 쓴 편지)."


  이태석 신부님의 정성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녀를 살리고 맙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었지만 이신부는 한국에 나갈 기회가 되면 부산에 산부인과 전문의인 친구를 찾아가 의술을 배웠다고 합니다. 혼자 모든 것을 담당해야 했으니까요. 오직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환자들의 가족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 


  "전쟁 중이던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많은 것들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빼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 전쟁으로 인해 부서진 건물과 수족이 없는 장애인들, 거리를 누비는  헐벗은 사람들, 한 동이의 물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아낙네들, 학교가 없어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전기에 감전된 듯 충격으로 며칠을 멍하게 지냈다." (이태석 신부).


  저도 중국에 있을 때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내 가족 하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집중하는 것 같아 참 부끄러워집니다. 지금도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며 가진 것보다는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불평, 불만하는 나 자신이 참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2009년, 대한의사협회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랑의 인술을 펼친 두 명의 의사가 상을 받는다. 두 번째로 시상대에선 사람, 깡마른 모습으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몸 안에 암세포가 펴지는 줄도 모르고 내전의 땅 수단에서 가난한 이들을 돌봐왔다. 진통제를 맞고 참석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리랑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 이름이 뭘까요? 아리랑의 어머니 이름? '아라리'잖아요. 왜냐면 아리랑 아라리가 낳네 ~~ 행사장에 웃음이 기득 하다." 이태석 신부가 선후배에게 수상소감을  밝힌다.

-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중 - 


  혼자 그 많은 일들을 감당했으니 어찌 몸이 버틸 수가 있었겠습니까? 암투병을 하면서도 환자를 계속 치유했다는 이태석 신부의 의사로서의 책임감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암투병 중에도 유머로서 대중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는 그의 인성은 예수님의 성품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상을 받으면서 수상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전문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특별한 백신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고도의 기술로 불치의 환자들을 고친 것도 아니고 단지 내세울 것 없는 자그마한 의술로 병원이 없는 곳에서 원주민들과 몇 년 살았을 뿐인데 이 상을 제가 몰래 홈쳐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괜히 죄책감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이태석 신부)


   한국에서 촬영팀이 온다는 소식을 든고 의대 앞마당에서 이신부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대여섯 명이던 인원이 14명으로 늘었다. 그중에는 여학생도 있다. 눈앞에 있는 이 많은 예비 의사들이 이신부 제자라니 너무 놀랍다. 다시 한번 제자가 맞는지 물었다.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자들에게 의사의 꿈을 갖게 된 이유를 묻자 모두가 이태석 신부라고 말한다. 이태석 신부가 부모, 형제의 생명을 살리고 환자에게 깊은 사랑을 주는 모습을 경험하고 지켜보면서 이신부를 닮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다. 소아과, 산부인과를 지망 한 제자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다며 진로 선택의 배경을 설명한다. "신부님이 병든 제 어머니를 살리셨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크면 신부님처럼 살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중 - 


  전쟁터로 아비규환인 수단, 그곳에서도 버려진 시골 마을 톤즈, 그곳에서 전쟁의 아픔과 부모의 무관심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그들 중에 이태석 신부를 닮은 의사가 되겠다며 14명이나 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수단에서도 의과대학 진학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특히 가난한 이 신부의 제자들에게 대학 진학은 사실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태석 신부와 그의 재단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습니다. 꿈과 희망도 없던 아이들에게 다시 꿈과 희망을 찾아주는 일, 이것 말고 더 아름다운 일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돈과 권력이 삶의 목표이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사회, 갈등과 분열로 혼란스럽고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일삼고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는, 그래서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그것이 '이태석 정신'이다. 리더는 인기나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흠집 내고자신을 부각한다고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똑똑하고 유능해도 불신받으면 리더가 아니다. 리더는 모투가 행복하도록 희생하는 봉사자다. '이태석 리더십'은 대단한 리더십이 아니다. 말보다는 실천을,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진심으로 걱정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려 노력하고 희망을 갖도록 도와준다.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다. 이태석 신부는 말보다 삶으로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구수환 님의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중 - 


  돈과 명예,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죽어가는 환자를 간호사에게 맡기고도 아무런 가책도 못 느끼는 현 의사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책으로 치유하는 책치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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