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가 활동하는 반경은 대부분 사는 집 안팎으로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집 안에서는 청소와 설거지 또는 식사하기 위해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는 안방과 거실, 주방을 오가는 정도였다. 그럴 때도 그의 발소리는 사붓사붓 조용해서 창문을 열거나 물 트는 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다른 방에 있는 이들은 그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중년의 가장으로 항상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그의 아내가 문방구를 할 때였다. 그의 하루는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5시에 문방구의 유리문 밖 옛날식 덧문을 ‘드르르’ 밀어내는 소리로 시작됐다. 그렇게 아내의 일을 거들고 본업인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채비를 서둘렀다. 퇴근 후에는 아내와 교대하여 가게를 지켰다. 밤에도 그는 새벽처럼 덧문을 ‘드르르’ 밀어서 닫는 소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간혹 일과가 평상시와 다른 날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는 날이었다. 그의 자전거 짐칸 상자는 문구류가 가득 실렸다. 가게는 늘 손님들로 붐볐다. 365일 내내 새벽부터 밤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던 물건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쩌다 가게의 손님들이 찾는 물건들이 없을 때는 그가 오라는 날 가면 어김없이 찾는 물건이 들어와 있었다. 이렇게 부지런한 그의 손발이 되는 자전거는 출퇴근길의 다리가 되고 짐칸은 때에 따라 황금색 도시락의 자리가 되기도 하고 문구류로 가득 찬 상자의 자리가 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병원이나 학교에 가는 아들과 딸의 자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항상 아내 곁에 있으면서 그녀의 요구에 따라 안방에서 나오기도 하고 머물기도 했었다. 그는 아내의 말을 따르면 모든 게 형통하여 가족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는 매사에 조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그를 가벼이 여기거나 업신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규칙적인 일상의 성실함이나 흐트러지지 않는 언사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그가 노인이 되었을 때도 아침이면 뒷동산에 올라가 철봉 위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프로에 나올 법할 정도의 고난도 기계체조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시간에 맞추어 영어 공부를 하고 TV를 시청했고 아내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둘이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그의 규칙적인 생활은 간소하고 반듯해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런 그는 건강을 잘 챙겨서 장수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에게도 질병이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그는 침을 흘리고 몸을 떨었으며 등이 굽기 시작했다. 식사할 때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에 음식을 떠서 겨우 입으로 가져갔다. 의사는 파킨슨병과 치매가 같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가족들에게 “평생을 나만 위해 산 남편의 병간호를 내가 해주고 싶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픈 남편을 위해 수영과 노래교실 등 모든 바깥 활동을 멈추고 그의 곁에만 있었다. 그렇게 그는 2년쯤 보살핌 속에 지내다가 어느 날 새벽 집을 나가버렸다. 그의 사위는 경찰서에 행방불명 신고를 했다. 경찰관이 CCTV 관제센터를 통해 확인하니 홈플러스 OO점 근처에서 그의 모습이 발견됐다고 전화로 알려왔다. 그곳에서 집까지는 성인걸음으로도 1시간은 족히 넘는 거리였다. 그를 데리고 온 경찰은 발견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르신은 보퉁이를 껴안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앞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치매의 마지막 단계로 어린 시절 자기 집을 찾아가는 행동입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부인은 옥상에서 미끄러져 다리뼈가 부러졌다. 혼자 일어설 수 없었던 그녀는 언제나처럼 곁에 있는 남편에게 일으켜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멀뚱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옥탑 세입자에 의해서 발견되어 119 소방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의 아내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남편을 지켜주겠다던 그 다짐을 지킬 수가 없었다.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퍼질 즈음, 그 부부의 딸이 조그만 가방 하나와 그를 데리고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요양원으로 갔다. 요양원 유리문 밖의 벤치에 부녀가 앉아있었다. 그의 딸은 멍하니 출입구인 유리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딸 옆에 다소곳이, 최대한 자신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둘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요양원 관계자가 딸에게 요양원 입원을 위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서류를 작성한 뒤에 그를 안내해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제야 그의 딸은 나직하게 “아버지, 건강하세요.”라며 잡고 있던 손을 관계자에게 넘겼다. 그녀는 고통을 삼켜버리려는 듯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는 아내에게 순종했듯이 순한 양처럼 유리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걸음걸이가 너무 조용하고 가벼워서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의 딸은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그가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었다. 몸을 어찌나 꽉 웅크렸는지… 의사나 간호사가 처치를 못하고 있었다. 그의 딸이 그의 손을 꼭 잡고 어깨를 다독이며 “아버지… 저예요. 몸에서 힘을 빼세요. 의사 선생님들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안심된 듯이 몸을 스르르 풀었다. 그가 딸의 보호자였듯이, 이제 딸이 그의 보호자가 되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은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간다. 그녀는 잠든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가 아픈 아기를 돌보듯이 딸은 그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자신의 인생을 담는다고 하는데, 그의 얼굴에선 고단한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름 하나 없는 그의 이마, 매끄러운 하얀 피부, 다만 그의 꽉 다문 입술에서 가난한 집의 장자로 태어나 가정을 일구어내기 위해 묵묵히 감내했던 인고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그녀는 그런 그의 얼굴을 다독거리듯이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에게 “아버지, 참 곱네요. 고생하셨어요. 제가 곁에 있을게요. 안심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한 달 뒤, 그는 여느 날처럼 조용히 떠나갔다. 잠자듯이 요양원 침대에서.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헌신했던 가족 중 누구도 그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요양원에서 운영하는 주간보호센터에 출석하자마자 이 소식을 들었다. 그의 딸은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녘을 걷는 중에 이 소식을 들었다. 제주의 세찬 바람이 허허로운 벌판을 달려 그녀의 온몸을 때리고 지나갔다.
*옛날식 덧문 : 문짝 바깥쪽에 덧다는 문으로 여러 개의 직사각형 모양의 문짝이 모여져 있다. 열을 때는 문짝 하나를 밖으로 떼어내고 다른 문짝들을 하나씩 문틀로 밀어내어 떼어내는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