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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오의 아들 레위

by 아침

오늘도 난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세금을 걷고 있다.

상인들은 매일 “물건이 안 팔려 죽겠어!”라며 짐짓 죽는시늉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엄살을 들으면
‘잘 살더구먼… 죽는 소리하긴.’ 이라는 생각에 더 매몰차게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잘 안된다.

어제도 나단네 가게에 세금을 받으러 갔다가 2 세겔밖에 받지 못하고 돌아왔다.

나단은 “요즘 장사가 통 되지 않아…”라고 푸념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3 세겔을 다 받을 수가 없었다.

세관장에게 적어도 2 세겔은 갖다주어야 하는데, 집에 가져갈 돈이 없어져 버렸다.


‘내가 왜 이렇게 약해진 거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악착같이 세금을 거두어들였었는데…

아마도 그 나그네의 소문을 들은 날부터인지도 모르겠다.

가는 곳마다 그의 얘기로 넘쳐난다.

아침이면 설레기까지 한다. 오늘은 그에 대한 무슨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는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욱 그가 ‘이 세상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요한마저도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는 사람, 그는 과연 누굴까?’


그의 주변에는 날마다 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병든 사람들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듣는 것과 다른 얘기를 듣기 위해서 먼 곳에서도 찾아온다고들 한다.

동료가 전해 준 얘기론

“그의 말은 때론 폭풍처럼 거칠게, 때론 호수와 같이 잔잔하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그와 함께 있으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다 뒤집어지는 느낌이야.

내가 붙들고 있는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져.

그의 깊은 눈빛에 빠져들어 버릴 것만 같아.

음… 가지 마!

오히려 맘만 괜히 더 싱숭생숭해져.”라며 말을 내뱉듯이 던졌다.

그의 흥분과 단호한 저지가 궁금증을 더 자극한다.


어린 시절,

내 삶의 짓눌림이었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푸근한 아버지의 품, 까칠까칠한 턱수염, 은은히 풍기는 박하 향기, “아 따가!” 하면서도 그 품이 그리워 다시 비비고 안기던 날들’ 그런 시절이 계속될 것만 같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품이 역겨움으로 바뀌던 날.

아버지 사무실 앞에서 한 남자가 ‘꺽 꺽’ 숨이 멎듯이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단호하고 건조한 말,

“아 글쎄, 이번 주 안에 가게 내놔! 안 그러면 아들을 팔아버릴 테니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미동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그러지 마, 그러면 안 돼’

많은 말들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난 지금,

증오하던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래도 형편을 봐가며 세금을 거두어들이고자 했었는데…

언제부터일까? 내가 이렇게 가혹해진 것은?

‘아, 그래’

세관장의 말을 들었지.

‘자네 능력 있는데, 맘에 들어! 좀 더 열심히 해. 내가 좋은 자리로 보내 줄게.’라는 그의 말에 신이 나서 상인들의 세금을 좀 더 부풀려 매기기도 했었지.

나 자신도 세금 징수원에 걸맞은 탁월한 능력에 감탄하기도 했었지.

노력했던 것만큼, 악랄했던 것만큼 돈은 더 많이 모아졌지.

어쩌면 세관장은 핑계인지도 모르겠다.

난 단지, 성실하게 일해서 가족들과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자 했지.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가족을 보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딸은 꾸미고 나가기에 바쁘고,

어쩌다 예뻐서 안아줄라치면.

“이따가 나가야 해요, 지금은 바빠요.” 하며

쏙 빠져나가 버렸지.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아빠는 돈밖에 몰라!”라며 눈을 치켜뜨고 분노하던 딸의 눈!

그 눈의 광채가 나의 어깨를 무너뜨려 버렸다.

가족들에게만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아버지께 차마 내뱉지 못하였던 말을 내 딸에게 들었다.

그때부터이다.

내 무기력증의 시작은.


돈은 나에게 어떤 것일까?

아플 때 쓰려고?

그런데 그분은 아픈 이를 고쳐준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이는 그 사람이!

권력을 사려고?

돈벌레로 치부하는…

어리석게도…


음…. 그런데 어떻게든 걷어야 하는데…

세관장이 이번 주까지 50 세겔을 걷어오라고 했는데…

어! 저기 뭐야?

사람들이 왜 이리로 몰려오나?


엉!

혹시… 설마…

아!… 그 사람이다…

그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일 줄 알았는데…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그가 편안해 보인다.

웅성웅성 몰려든 사람들 속에 있는 그는 허름한 옷을 입었음에도,

첫눈에 알아볼 정도로 다른 이와 다른 그 무엇이 있다.

뭘까? 이 느낌은?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그를 기다린다.

그가 천천히 군중들과 함께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다!

숨고 싶다.

아니? 더 가까이 가고 싶다.

그가 나를 본 것 같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어떡하지?

그가 내 앞에서 멈추어 선다.

그의 잔잔한 미소에 난 꼼짝할 수가 없다.

그는 내가 적고 있었던 장부를 내려다본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귓불까지 빨개진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한다.

순간 ‘냉혹하리만큼 차갑게 세금을 거둬들이던 내 모습과 쩔쩔매던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가 손을 내민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그의 따뜻한 눈길 속에서 그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날 말이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날! 손가락질하는 날!’

지나온 날들과 희미한 미래가 안개처럼 뿌옇게 떠올랐다 사라져간다.

딸과 아버지의 얼굴이 함께 겹쳐지면서.


내 집 커다란 거실에서 그와 같이 식사하고 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꿈꾸고 있는 듯이 몽롱한 가운데에도 아내와 딸이 분주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두 사람의 얼굴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설렘과 환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마음이 짠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더러운 손을 씻지 않았다.


그는 막다른 골목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게 문을 열라고 한다.

난 그 문을 힘차게 밀친다.

눈부시게 환한 빛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설렘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는다.

어디에선가 꿈결처럼 들려온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네.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문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오래도록 닫혀 있던 내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2019.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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