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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아래, 엄마에게 가는 길

by 아침

햇빛이 따갑다.

양산을 써도 훅훅 올라오는 열기로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다.

도심의 아스팔트가 끝도 없이 이어질 듯한데, 눈앞에 ‘딱!’ 나타난 초록 풀밭이 지친 발걸음을 유혹하듯 산들거린다.

포장되지 않은 초록 풀밭이 시골길 입구처럼 동그마니 놓여있다.

가끔은 베어낸 듯한 그 풀밭은 걷기에 딱 좋다.

사실, 인도가 풀밭에 들어서기 직전에 우측으로 빙빙 아주 많이 돌아 건널목을 건너 병원으로 올라가라고 놓여져있다.

그러나 나는 인도도 건널목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이 길을 풀처럼 산들거리며 지나간다. 늘 그렇다. 단 하루도, 안 그런 날이 없다.

풀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고스란히 감내하듯이 잎이 땅에 바짝 붙어 자라고 있다.

나는 언제나 이 풀밭에 당도하면 ‘드뎌 다 왔어!’라고 환호의 팡파르를 머리 위로 ‘팡팡’ 터트린다.

아직도 족히 5분 넘게 걸어야 할 텐데 말이다.


엄마는 오늘도 침상에 누워있다.

“엄마!”
“엉?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긴, 엄마 보러 왔지~”

“바쁜데…”

여전히 둘째 딸은 ‘바쁜 딸’이다.

우린 옥상 하늘정원으로 ‘고~~고!’ 한다.

그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하늘과 바람, 꽃과 열매가 달린 나무들. 심지어 벼도 있다. 아, 새도 있구나.

모두가 쉬어가는 곳, 그곳은 우리들의 쉼터다.

하늘도, 엄마도.


그늘진 정자에 앉아, 나는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막 삶은 옥수수, 달콤하고 물렁물렁하게 잘 익힌 복숭아,

늘 냉동고에 넣어 하루에 한 개씩 드리던 곶감, 바삭한 쿠키까지.

엄마는 참 맛있게도 드신다.

예전엔 “난 과자는 안 먹어” 하셨던 엄마였는데, 나는 그 말을 한때 믿었었다.

그런 엄마가 드시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배가 부르다.
문득, 웃음이 난다.

‘당신이 배가 부르니, 내 배도 부르네요.’

사랑하는 나의 엄마,

오늘도 나는 희망 고문을 해요.

당신이 기저귀를 떼고, 다시 걸어 나올 그날을 기다려요.


몇 개월 전, 엄마가 폐렴으로 입퇴원 반복하던 어느 날.

단 하루 겨우 옥상에 올라가서 감자를 심었죠.

당신의 호미질은 설렁설렁 미덥지 않아 보였지만, 전 알아요.

그게 내가 힘을 줘서 꼭꼭 눌러심은 씨감자보다 훨씬 더 잘 자랄 거라는 걸.


그 감자들은 믿음을 외면하지 않았어요.
무성하게 쑥쑥 자랐지요.

90일이 지난 햇빛 좋은 여름 날, 드디어 감자를 캤어요.

감자는 당신의 넓은 품에서 자란 우리 남매들처럼, 단단하게 주렁주렁 올라왔지요.


그중 큰 감자들만 골라, 엄마가 평소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잘 쪄서 병원으로 가져갔어요.
“감자는 다 익을 때쯤, 물을 따라버리고 약간 굽듯이 쪄내야 맛있어.”
그렇게 쪄낸 따뜻한 감자를 병동 분들과 나누어 먹으며 말했죠.

“우리 엄마가 심은 감자예요~”

“아구야! 의미있는 감자네”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엄마,
언젠가 당신의 손이 당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를 키웠던 당신의 손,

그 손은 늘 약손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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