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를 시작한 지 벌써 두 해를 넘겼다. 계기는 어느 한 두 가지의 이유로는 설명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자연, 산, 물, 나무와 새 등등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나이가 들면서 부쩍 '자연인의 삶'에 집착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시골살이를 할 수 있을만한 경제적 능력과 은퇴라는 시간적 공간이 생겼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아직 만족할 만큼의 실력과 환경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꾸준함으로 대체하고 있다.
굳이 시골살이라 제목을 붙여 표현하는 이유는 나의 시골살이가 소위 말하는 '귀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귀농은 말 그대로 농촌으로 회귀를 뜻하지 않는가?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농사일은 해본 적도 없는 도시인 그 자체다. 보다 정확하게 하자면 시골에서의 삶도 아니다. 어쩌다 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는 이웃들과 함께 공간을 나누어 쓴다는 것일 뿐이지 시골에서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얼마간의 마음의 여유를 얻고자 억지로 시골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작정했다. 한번 살아보는 거지!
우선 지리적 특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곳은 이제 세계적 관광지로 등극했다는 시애틀에서 북쪽으로 80마일 떨어진 Sedro-Woolley라는 자그마한 도시다. 인구는 약 2만 명 정도지만 과거 교통소재지로 남과 북 동과서를 잇는 주요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꽤 알려진 곳이다. 특히 나처럼 산을 자주 오르는 사람이라면 매우 중요한 곳이다. 몇 밤 며칠 동안 산에서 지내기에 알맞은 코스가 동쪽으로 향하는 간선도로에 즐비하게 널려있다. 당연히 이곳을 거쳐야 하고 자연스레 베이스캠프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목재업으로 지역 경제를 일떠세웠으나 지금은 관광업으로 근근이 도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 같다. 이 지역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는 따로 정리하려고 한다.
나의 집은 약 오십 년의 나이를 먹어서 낡았다. 다행스럽게도(?) 원래 주인으로부터 구입했다. 즉 나와 아내가 두 번째 주인으로 등록되었다. 첫 구매시기에 전주인이 해주었던 몇 가지 말들이 기억난다. 전주인의 부부가 40대가 되었을 즈음에 육십에이커의 지금의 임야를 샀다나... 그것을 불도저로 밀어서 지금의 주거공간을 확보했다고 한다. 물론 그 많던 삼나무는 벌목해서 내다 팔았다. 그 공간에 본채와 별채 창고와 주차장 그리고 트랙터와 같은 농기구를 보관하는 'Shop'을 지었다. 시골이니 만큼 본채와 별채는 화려하지 않게 그러나 실용성을 최대로 살려서 지었다. (소박하고, 쓸모 있게 배치했다.) 아마도 안주인께서는 아담한 정원을 간절히 원했었나 보다. 앞마당 뒷마당 곳곳에 아담하게 꽃밭을 가꾸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그마한 연못도 있었고 인공적으로 만든 분수대를 설치했다. 한참 동안 애정을 가지고 구석구석까지 세심하게 가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십년여년이 흐르고 어느덧 은퇴를 바라보던 남편은 일찍이 떠났다. 얼마 안 되어 홀로 된 안주인은 병마와 싸워야 했다. 모아둔 재산을 탕진하고 급한 나머지 이십 에이커를 팔아야 했다. 마치 자기의 살점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니 무슨 여유와 안정을 찾을 수 있었게나? 살뜰하게 가꾸던 정원과 과수원은 이내 망가지고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구매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여러 곳이 망가지고 흩뜨려 져 있었다. 십여 년간 돌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팡이를 집고서 우리를 맞이해 주던 얼굴에는 지친 흔적이 역력했다. 꼭 거래가 성사될 수 있도록 마음 써달라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멀어질 때 그녀는 두 번 세 번씩 손을 흔들었다.
한 달 후 한두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마침내 등기서류에 서명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땅주인이 된 것이다. 임야를 포함하여 사십에이커의 땅을 구입한 것이다. 언뜻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땅은 오 에이커 남짓이다. 나머지는 삼림구역으로 남겨놓아야 한다. 다만 내 땅인 만큼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길을 만들고 틈 날 때마다 나무를 심어야 한다. 나무를 심고 관리한다는 조건하에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다.
입주 후에 전 주인 부부가 임야와 땅을 어떻게 관리하고, 무엇을 심고 가꾸었는지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아마도 두 주인 모두 암으로 고생했던 모양이다. 도처에 약초로 분류되는 초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최소 이십여 가지 정도의 약초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일부러 심었는지 이전부터 자생하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구글에서의 표현에 의하면 보물단지를 찾은 것과 같은 것이라나...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효능을 보여준 약초가 있었다. 요즈음 목이 칼칼하고 뭔가 끼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약초를 끓여 마시는데 놀라울 정도로 빨리 해소된다.
한 해 동안 망가진 시설물을 철거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사용한듯하다. 그다음 해인 2024년 동안 '새로운 것'을 짓고 세우고 만드는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사용했다. 그 결과 지금에 와서야 기거할 만한 공간과 시설이 갖추 어진듯하다. 올해 2025년은 바깥일에 온통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비로소 본연의 업이 되어버린 농사일에 전념하겠다는 뜻이다.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는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빙하기시절 이곳은 무거운 얼음이 짓누르고 있었다. 해안가와 가까운 곳이었으니 빙하는 그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온갖 크기와 종류의 자갈과 바위를 싣고 와서 이곳에 내려놓았다. 한 삽 깊이만 파고 들어가도 자갈과 제법 큼지막한 바윗돌이 얼굴을 드러낸다. 한 뼘 남짓한 땅을 일구어내려면 며칠 동안의 땀과 노력을 제공해야 한다. 그 힘든 일을 절반은 기계가 해야 하고, 절반은 사람이 해야 한다. 봄이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는 이유다.
나의 시골살이의 원년이 시작되었다. 나의 농촌살이가 시작되는 첫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