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이 내게 가져다 준 ‘순기능’
이 경험을 ‘순기능’이라고 불러도 될지,
사실 지금도 망설여진다.
이 고통들이 좋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난 시간 동안
내 안에 조용히 생겨난 변화들을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을 뿐이다.
2022년 2월 19일에 뇌출혈이 오고 난 이후로
힘든 일이 정말 많이 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이 아팠고 많이 힘들었다.
저마다 힘든 사정을 갖고 살겠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진짜 많이 힘들었고, 어찌저찌 잘 극복했다.
아니, 잘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항상 그렇듯이 시간이 약이더라.
지나고 나니 괜찮아지더라.
진짜 다행이다.
나쁜 마음 안 먹어서.
그 모든 걸 버텨내고 나니
나는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돼 있었다.
얼굴 말고 마음 말이다.
어우...3년 전은 진짜 생각하기도 싫다.
지금에서야 안정기에 들어선 것 같다.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 혼자 운동하면서
정말 많은 걸 깨달았다.
어쩌면, 나이 육십에서야 깨달을 만한 것들을
20년이나 일찍 깨달은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약, 뇌출혈이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와이프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하면서 살고 있을 거고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살고 있을 거고
선생님들과는 인사만 하고 살고 있을 거고
간짜장, 피자, 치킨, 곱창 같은
자극적인 음식들로
과식, 폭식, 야식을 하고 있을 거고
현재의 삶에 만족해하면서
매달 비슷한 월급을 받으면서 살고 있을 거고
환자들이 힘들어하는 고통들을 대충대충 들으면서
나에 대한 자만심을 갖고 살고 있을 거고
상대방의 잘못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화만 냈을 것이고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을 못 만났을 것이고
읽씹, 안 읽씹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인간의 선함은 마음의 여유에서 온다는 걸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나도 틀릴 수 있음을 몰랐을 것이고
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SNS를 하는 것은
목이 마르다고 해서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똑같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고
행복한 것보다 행복해 보이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안 채로 살고 있을 것이고
삶은, Doing이지 Showing이 아님을
몰랐을 것이고
과하면 외면받고, 절제하면 인정받는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지금도 형편없는
어휘력을 구사하고 맞춤법을 쓰고
띄어쓰기를 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고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살고 있을 것이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기보다는
돌아볼 과거가 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몰랐을 것이고
엄마는 새하얀 밥을 좋아하고
아빠는 반전 매력이 있음을 몰랐을 것이고
남들에게 너무 많은 나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 게 좋다는 걸 몰랐을 것이고
걸을 수 있는 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게
복시가 없는 게, 아프지 않은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알지 못했을 것이고
가족들과 외식하고, 산책하고, 여행 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몰랐을 것이고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고
내 가족들과 부모님,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을 것이고
이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 안 하는지 몰랐을 것이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다.
적어도 이거의 세 배는 있는 것 같은데
당장 생각나는 게 이것밖에 없네.
이것 외에도
공과금, 가족들 통신비, 보험료,
적금, 카드값, 아이들 학원비, 주유비, 생활비,
식비, 관리비, 집 대출금, 계모임 회비,
회식비, 4대 보험료, 옷이나 신발값,
경조사비, 재산세, 자동차세, 군것질비,
술값, 대리운전 비용, 여행비, 배달 음식비등을
안 내게 되니까 한 달 지출금이 많이 없어졌다.
부담이 많이 줄었다.
좋으면서도 이상하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는
배고프고 힘들 때 나온다.
나는, 아픈 뒤로 치료를 못 하게 되니까
사람들 몸을 분석하는 능력이 더 생겼고
수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예전과 같은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프기 전에는
사람들을 아무리 자세히 쳐다봐도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겠더니
지금은, 잠깐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가 다 보이는 걸 보면
지금 써먹게 하기 위해서
이걸 볼 줄 아는 능력을 내게 주신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이것만큼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신을 믿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하다)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결국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 되더라.
지금까지 사는 내내 그랬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이 모든 걸 깨닫지 않았어도 좋으니
그냥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긴 하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그때의 순수했었던 나로,
아무것도 모르던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은
그런 쓸데없는 상상을 할 여유가 없다.
얼마 전에 MBTI 검사를 다시 해봤는데
T의 비율이 40%로
전에 비해서 많이 올라갔더라.
나는 그래도, 여전한 INFJ.
아무래도 날마다 해결책을 찾다 보니
이렇게 변한 게 아닐까?
살다 보니, F보다 T의 매력을 더 크게 느낀다.
충남대병원으로 실습 나갔을 때
24살 시절에 만났었던 동갑내기 중증 여자환자.
내가 기억하기로는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서
말도 못 하고 표현도 못 하는
최악의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올 때마다 핑크색 빵모자를 쓰던
얼굴이 하얗고 참 예쁜 친구였었는데...
철없는 실습 동기 동생들이 놀릴 때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기립대에 묶인 채로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는 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좋아졌을까?
그 친구도 올해에 마흔두 살이겠네.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요즘 들어
그 친구가 한 번씩 생각난다.
뭐든지 자기가 직접 겪어봐야지만 아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