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의 뇌출혈 회복 연대기 27

《걷고 싶다》 조용필

by 캐롯킴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네 손을 품에 넣고서



23.4.12에 작성한 글.



며칠 전,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실수로 왼쪽 이어폰이 빠졌는데
노래 소리가 절반 크기로밖에 안 들리는 거다.
놀라서 다시 끼우니까 다시 잘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왼쪽 이어폰을 뺐더니 소리가 줄었다.


오른쪽 귀가 절반 크기로밖에 안 들린다는 걸
며칠 전에서야 알았다.


어쩐지 머리를 자르러 갔을 때 바리캉 소리가
왼쪽 구렛나루를 깎을 때는 크고,
오른쪽 구렛나루를 깎을 때는 작더니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거는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니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그냥 당황스럽고 무서웠을 뿐이다.



오래된 직장 동료들이 나와 마주칠 때마다
나보고 엄살 좀 부리지 말라고 말한다.


평소 장난치는 이미지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동안 봤던 환자들도 다 조용히 했는데
나만 유난 떤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환공포증은 당사자만이 아는 고통이다.
하지만 그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의외로 흔하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내가 겪는 느낌을 가진 환자도

물론 어딘가에 있겠지만
환공포증보다는 적을 것이다.


당사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동그라미가 많은 게 왜 무서운 건지
미디어에서 자주 접해봤기 때문에
그 고통을 어림짐작으로 이해한다.


근데 내가 호소하는 증상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병원 환자분들 중에도
나와 같은 증상들을 호소하는 분은

단 한 분도 안 계신다.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와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기쁠 것 같다.


진정한 도플갱어.
만나면 “정말 힘드시죠”라고 말하면서
꼭 안아 드리고 싶다.



저번에 설정한 내 목표를 수정해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그건 까마득한 일인 것 같다.


서서 혼자 소변기에 소변 보기
(4년이 지난 지금은 이룸)
두 손으로 스마트폰 쓰기
휘파람 제대로 불기
(4년이 지난 지금은 이룸)
차가운 물로 손 씻기
이거로 단기 목표를 하향 조정해야겠다.



걷기 운동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담당 선생님께 동의를 구하고
오랜만에 욕 좀 했다.
쌍욕은 너무 심하고 상욕 정도만 잠깐.


ㅆ과 ㅅ은 엄연히 다르다.
역시 나는 욕이 안 맞다.
하고 나니까 더 힘들었다. ㅋㅋ



지금 내가 불편한 것만 말해도

현재 50가지가 넘는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너무나 멀쩡하다.
아니,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피부가 더 좋다.
그러니까 내 말을 못 믿을 수밖에.


이제는 다 이해한다.
내가 힘든 건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옆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와이프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까?


내 의식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날 살리려고 와이프 혼자 죽어라 고생했다.
이제는 내 차례다.


내가 의식이 돌아왔으니
이제는 나 스스로 최대한 많은 걸 해야 한다.


와이프와 12년을 살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같이 대화를 하면 너무 재밌을 뿐더러
정말 현명하고 센스가 넘친다. 에휴...


문득 집에 있는 고양이의 MBTI가 궁금해서
“여보~~ 우리 집 고양이는 MBTI가 뭘까?”
라고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MEOW 아닐까?”
캬~~ 센스에 무릎을 탁 쳤다.


나보고 엎드리라고 하고
등을 마사지해 준다고 하면서
등 한가운데를 만지더니
여기를 하면 갑상선이 좋아지고
또 여기를 하면 족저근막염이 낫는다며
엘보우 공격을 무자비하게 하는 와이프.


아침에 치료실로 나 혼자 운동을 갈 때
와이프가 꼭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여보~~ 돈 많이 벌어 와!” ㅡㅡ;;


내가 열심히 해서 더 안 아파지는 게

돈 버는 길이다.


내 새치를 항상 와이프가 뽑아주니까 미안해서
나도 와이프 새치를 뽑아줘 볼까 하다가
검은 머리카락만 한 뭉터기를 뽑아버렸다.


와이프도 사람이니
나처럼 단점이 몇 개 있다.


그런 건 내가 고쳐주면 되니까
문제 될 게 없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에휴...



요즘 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한다.
알코올 들어 있는 건 위험하니까
무알코올 맥주를 자주 마시는데
그동안은 마실 때마다 맛이 없어서 한 잔만 했었다.


오잉? 카스 0%는 처음 마셔보는데
오, 이것 봐라.
이거 꽤나 맛있다.

세 잔이나 마셔버렸다.
역시 국민 맥주 카스야.


낙타 오줌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무알코올 맥주는 마실 때마다

낙타 오줌 맛이 나는 것 같다.


근데 카스 0%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전국의 모든 뇌졸중 환자들과 임산부들

마트로 ㄱㄱ.


아, 이것도 약간의 알코올이 있다고 하니까
임산부는 NO NO.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내일이 나의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하면
출근길, 등굣길에 항상 보던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매일 아침마다 운동하러 가는 복도를
오늘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에 좀 더 감사할 수가 있더라.


바이오리듬이 요즘에는 고점이다.
다시 힘내고 있다.


우리가족 덕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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