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여행》 원미연
언제까지 너에게
좋은 기억만을 남기고 싶어
이제는 모든걸 변명처럼 느끼겠지
다시 한번 너에게
얘기하고 싶던 그말 사랑해
너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원했던거야
23. 4. 16 에 작성한 글.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런 끔찍한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그분들은 20대 중반을 넘겼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학생들이 그런 일을 당하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전 스쿨존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집에 있는 전동침대의 등받이 최대 각도인
65도 정도를 세워 놓은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그렇게 좋더라.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가 보다.
아주 천천히 좋아지는가 보다.
감각이 없는 내 왼쪽 얼굴과, 불편한 왼쪽 눈,
온도를 못 느끼는 내 오른팔, 굳어버린 왼쪽 혀는
생각보다 더 오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은 마음을 단단히 먹는 중이다.
(3년이 더 지난 지금은
눈 통증만 많이 줄고 나머지는 여전함)
얼마 전 내 꿈에,
예전에 같이 일했었던 병원 사람들이 나왔다.
대표 원장님께서 술에 취하신 채로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시더니
기본금 500에
건당 인센티브를 5만 원이나 주신다길래
땡 잡았다고 생각하고 진짜 열심히 일했다.
그 대신 새벽 6시 출근에 밤 8시 퇴근이 조건ㅋㅋ
또 다른 꿈에서는 어떤 환자의
10년 동안 아프던 무릎을 딱 한 번 치료하고 완치시켰다.
비록 꿈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그래서 조만간 무릎 치료법에 대해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실제로 몇 년 전에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밤 8시에 퇴근하기도 했었다.
그땐 치료하는 게 너무 재밌고 행복했었다.
힘든 줄도 몰랐었다.
그렇게 소처럼 일했던 것 덕분에
내가 1년 차 때 꿈꿨었던 연봉도 이룰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아프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그때 소처럼 일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괜히 소띠가 아니다.
그러니까 돈은 적당히 벌면서
몸을 생각하는 게 결국 돈 버는 길인 것 같다.
사람은 모름지기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하며,
상대가 잘났든 못났든 절대 깔보면 안 된다.
나보다 상대가
좋은 면을 더 많이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적당한 자존감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그게 너무 넘치면 남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잘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넘쳐버리면
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로 변질돼버릴 수도 있다.
나는 적당히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적당히 남도 챙길 줄 알며,
적당히 상처가 있는,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치지 않고
모든 걸 적당히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새빨갛고 매끈한 예쁜 사과보다는
투박하고 거친 사과가
더 달고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사람은 고마워할 줄도 알고
미안해할 줄도 안다.
그 사람의 말투와 행동거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은
너무 거만하며,
미움만 받고 자란 사람은
상처의 골이 너무 깊어서 항상 그늘지다.
유연한 고무는 단단한 나무보다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내 주변에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몇 사람 있다.
내 지식들이 그분께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은 무조건 잘돼야만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권선징악을 믿는다.
사람이 말이 너무 많으면 언젠가는 실수를 한다.
말이 많은데도 재밌고 실수가 없다면
유재석님처럼 우리나라에서 탑 찍는 거고.
나도 말실수 안 하게 항상 조심해야지.
나도 유재석 형님의 꿈처럼
말년에 한적한 곳에 카페 하나 차려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수다나 떨면서 살고 싶다.
조동아리 모임이 너무 부러운 1인.
멋진 풍경을 보고는 그림 같다고 말하고
멋진 그림을 보고는 풍경 같다고 말하는
참 아이러니하고도 복잡한 세상.
복잡한 얘기 말고,
별 시덥지 않은 얘기나 하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말년을 편하게 보내고 싶다.
내가 특히 많이 알고 있는 분야는
바로 연예 부문과 상식 부문.
나는 이쪽 분야에서는
거의 디스패치 수준이다.
예전에는 사진 구도도 공부했었고
혼자서 무겁고 큰 DSLR을 메고 이곳저곳으로
출사도 가끔씩 나가곤 했었다.
나는 사탄 들린 듯한 방광 조절 실력으로
이 병원에 온 지 총 8개월 동안
치료 시간을 딱 두 번 빼먹었다.
작년 광주에 있었을 때는 소변 때문에
수도 없이 땡땡이를 쳤었다.
이젠 방광을 조절하는 능력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며칠 전, 우리 아이들과
우노라는 보드게임을 했는데
상대방 카드가 한 장 남았을 때
“우노”라고 최대한 빨리 말해야 하는
규칙이 있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나는 말이 느린 탓에
“우~~노~~”라고 천천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 같이 엄청 웃었다.
애초에 내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게임, 우노.
근데 처음 썼을 때는
10개를 목표로 쓰기 시작했었는데
벌써 30개나 쓰다니...
나도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
글을 쓰는 건
마치 드래곤볼을 모으는 느낌이랄까?